오늘의 저편 <100>
오늘의 저편 <100>
  • 강민중
  • 승인 2012.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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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어머님 사실은 요즘 그이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옵니다.”

민숙은 해결방법이라도 청하는 얼굴로 여주댁을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그래? 학교에 무슨 일이 있다더냐?”

여주댁은 머리끝이 쭈뼛해지고 있었다. 평소에 술을 입에 잘 대지 않는 아들이었다.

‘변고다! 변고는 무슨, 남자가 바깥일을 하다 보면 술을 마실 수도 있는 것을 가지고 방정맞게 내가 왜 이러는 거야?’

목에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따끔거렸다.

“아무리 물어도 말을 안 해 줘서 알 수가 없습니다.”

“너도 참 너다. 남편이 말을 안 해 준다고 알 수가 없다니?”

여주댁은 일없이 발끈했다. 그동안 며느리에게 단 한 번도 싫은 소리 같은 건 하지 않았거니와 딸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있어서일까. 앉은자리에서 후회했다.

“어머님께서 좀 알아봐 주세요.”

민숙이도 무심결에 볼멘소리를 냈다.

“학교 일이 마음에 잘 맞지 않느냐?”

며느리를 감정 없이 흘기고 마루로 나온 여주댁은 풀기를 완전히 뺀 목소리로 아들에게 그 마음을 위로하듯 물었다.

“아닙니다. 저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진석은 어머니를 피하여 달아나듯 방안으로 들어가선 서둘러 웃옷을 걸쳤다.

평생 동안 아버지를 숨겨놓고 지내야 했던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인간적으로는 동정심이 생겼다. 남의 이야기였다면 그렇게 지독한 부부사랑에 감탄하여 신선한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진석은 빤히 들여다보이는 어머니의 그 마음이 혐오스러웠다. 차라리 뻔뻔스럽기까지 했다.

“아침 밥술도 뜨지 않고 어딜 가겠다는 거냐?”

여주댁은 아들의 손을 덥석 잡았다. 빈속에 나가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대를 잇는 문제는 못을 박아두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손자타령을 하시려거든 앞으로 저희 집에 오시지 마세요.”

진석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며 댓돌 위로 내려섰다.

“뭐, 뭐라고?”

찬바람을 일으키며 달아나는 아들의 꽁무니를 멍한 동공으로 바라보던 여주댁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얼굴빛이 치자 불린 물에 세수라도 한 듯 노랬다.

‘저 놈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이 어미 앞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놈이 아니었는데, 혹시 설마?’

여주댁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불안감이 수많은 벌레처럼 온몸에서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니…….”

진석의 어이없는 행동에 민숙이도 놀았다. 시어머니가 손자를 안아보고 싶다는 이야길 정식으로 끄집어낸 것도 아니었다. 그 마음을 뜸도 들이지 않고 읽어버린 남편에게 낯선 의혹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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