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02>
오늘의 저편 <102>
  • 강민중
  • 승인 2012.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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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잃은 낙엽이 길거리를 쓸쓸히 배회하고 있었다.

‘지금쯤 학동에선 이것저것 거둬들이기 바쁘겠지? 내가 왜 이러누? 반겨줄 이도 없는 고향은 왜 그리워하니?’

주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치며 여주댁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학동을 생각하면 아픈 기억들만 머리를 가득 메웠다. 제일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평생을 숨어 지내야 했던 남편이었다.

‘그곳 사정은 어떤가요? 지내기가 편편한가요? 쇠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데…….’

여주댁은 허공으로 목을 들어 실없이 중얼거렸다. 삭여지지 않는 그리움을 달래지 못해 제바람에 피식 웃다간 울음이 실린 서러운 입만 삐죽거렸다.

시어머니를 배웅하고 대문간으로 들어가려던 민숙은 몸을 돌려 골목길로 나갔다. 필중의 집으로 한번 찾아가 볼 작정이었다. 남편은 평소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끼는 제자여서인지 녀석의 이름을 몇 번 들먹였고 국밥집을 하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된 것이었다.

‘…사내자식이…? 피, 필중이 너 이 자식…….’

며칠 전 만취한 남편이 잠꼬대처럼 했던 말이었다.

술김에 필중의 이름을 뱉어놓았다고 남편의 일탈이 녀석과 무슨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민숙은 집에 가만히 앉아서 망가지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그 국밥집의 문이 닫혀 있었다. 순간 암담해진 민숙은 진행방향을 놓쳐버린 얼굴로 멍청히 서 있었다. 다음 순간 가게에 딸린 단칸방으로 통하는 다른 문을 찾아내기 위해 눈을 사방으로 번쩍였다.

샛문을 빨리도 찾아낸 민숙은 누군가를 기다리듯 작은 입을 있는 대로 다 벌리고 있는 그곳으로 쑥 들어가며 인기척을 냈다.

“피, 필중이냐?”

놀란 닭이 홰치듯 목소리가 급히 울리며 방문이 홱 열렸다.

“아, 아뇨오! 저어 안녕하십니까. 김필중 학생 할머니 되시죠?”

흠칫하며 민숙은 재빨리 인사부터 챙겼다.

“어서 오우. 뉘신지? 혹시 우리 손자 어디 있는지 알고 있수?”

때 아닌 때에 찾아온 낯선 손님의 입에서 손자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인지 노파는 희망이 급히 엉기는 얼굴로 민숙을 뚫어져라 보았다.

“예. 전…….”

필중이가 가출해 버렸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버린 민숙은 별안간 말문이 딱 막혔다. 손자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노파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따끔거렸다.

‘그렇게 착실하던 아이가 왜 갑자기 집을 나가 버린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진 민숙은 엉겁결에 자신이 누구라는 사실부터 밝혔다.

“사모님까지 이래 우리 손자한테 마음을 써 주시니 이 늙은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민숙의 방문 목적을 마음대로 오해한 노파는 큰절이라도 올릴 듯 허리를 연신 굽혔다. 녀석을 찾기 위해 담임이 백방으로 애쓰고 있는 것도 눈물 나도록 고맙다고 하며 몇 번씩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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