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14>
오늘의 저편 <114>
  • 경남일보
  • 승인 2012.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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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면 좋아요? 통행금지 시각이 다 되었을 텐데요.”

노파에게 그었던 시선을 진석에게 당겨가며 민숙은 난처한 얼굴을 했다.

“오늘 밤에는 우리 집에서 주무시게 해야지.”

“그래야 되겠죠? 사실은 저도 학생이 다른 곳으로 숨어버릴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필중인 약속을 꼭 지킬 거야. 그리고 만약에, 음, 만약에…….”

공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진석은 뭔가 애매하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뭔데요? 말씀해 보세요.”

노파를 곁눈질하며 민숙은 진석에게 바짝 다가갔다.

“필중이가 암자에 있다고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그 녀석 아버지였거든.”

진석은 굳이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그냥 말했다.

“그랬어요? 그런데요?”

무심결에 반문하는 민숙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얼른거렸다.

“지금도 숨어서 필중이를 지켜보고 계시지 않겠어?”

노파의 귀를 의식하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니까 학생이 다른 곳으로 갔더라도 다 지켜보고 있을 거란 말씀이죠?”

민숙이도 노파 들으라는 듯 일부러 목소리를 좀 높였다.

“그러니까 뭔가유? 우리 필중이가 다른 곳으로 갔더라도 애비가 보고 있다가 가르쳐 줄 거란 그런 말씀이쥬?”

노파를 몸을 슬그머니 일으키며 야무지게 결론을 내렸다.

진석와 민숙이도 맞장구를 쳤다.

말없이 목을 끄덕이는 노파의 눈에 굵은 눈물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들락거리던 달은 별안간 기분이 좋은지 노란 얼굴을 슬쩍 내밀며 바보처럼 헤 웃었다. 눈웃음밖에 내리쏟을 줄 모르는 별들은 초롱거리는 눈빛으로 세상을 구경하기만 했다.

다음 날 새벽 민숙은 여느 날보다 일찍 아침밥을 짓고 있었다.

“아니 이걸 누가 여기다?”

세수를 하기 위해 마당으로 나갔던 진석은 세수 대야에 담겨 있는 그 양말을 보곤 눈을 부릅뜨며 민숙을 불렀다.

“왜 그러세요? 양말은 누가 여기다 버린 거야?”

앞뒤 없이 부엌에서 나온 민숙은 마당에 팽개쳐져 있는 양말조각을 집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만지지 마.”

진석은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왜요? 멀쩡한 양말인데요?”

양말로 손을 뻗다말고 민숙은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남편을 보았다.

“멀쩡하긴 뭐가 멀쩡해. 뒤꿈치는 다 해지고 발가락이란 발가락은 다 나오는데.”

진석은 말이 나오는 대로 급히 둘러댔다. 사실은 뒤꿈치가 조금 닳아있긴 해도 아직은 한참을 더 신을 수 있었다.

“꿰매면 되요.”

그러면서 민숙은 양말을 집어 들었다. 그녀도 그 양말의 해진 상태쯤은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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