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15>
오늘의 저편 <115>
  • 경남일보
  • 승인 2012.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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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오늘의 저편

“민숙앗, 손 깨끗이 씻어라앗!.”

아내의 등에다 대고 진석은 명령조로 비명을 질렀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민숙을 보는 순간

그녀의 손에 남아 있던 나균들이 보였던 것이었다.

“그냥 버려. 버리라니까?”

양말을 빼앗은 진석은 쓰레기통에다 버리곤 손을 거칠게 씻어댔다.

할 말을 잃어버린 민숙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남편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양말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저러지?’

민숙은 못내 아깝다는 얼굴로 쓰레기통에 잠시잠깐 붙박아두었던 눈을 남편에게 당겨갔다.

진석의 행동에 대하여 그 영문을 모르기는 필중의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 사모님을 많이 아끼네유.”

노파는 그냥 보고만 있자니 멋쩍었던지 그냥 그렇게 한마디 했다.

‘남자가 너무 깔끔을 떨어도 여자가 힘든 법이디.’

소리 없는 중얼거림을 덧붙이며 민숙을 힐긋거렸다. 이어 빨리 길을 나서자고 노골적으로 재촉하듯 일없이 왔다 갔다 했다.

“양말 좀 꿰매는 것이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노파의 마음을 알아차린 민숙은 혼잣말로 퉁퉁거리곤 부엌으로 들어갔다.

“민숙앗, 손 깨끗이 씻어라앗!.”

아내의 등에다 대고 진석은 명령조로 비명을 질렀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민숙을 보는 순간 그녀의 손에 남아 있던 나균들이 음식 속으로 꿈틀거리며 들어가는 장면이 보였던 것이었다.

“예엣?”

민숙은 당혹스런 얼굴로 진석에게 목을 돌렸다. 단둘이 있는 데서도 여자가 청결에 관한 문제를 지적받으면 기분이 상하는 법이었다. 하물며 학부형까지 보고 있는 자리였다. 민숙은 남편의 돌발적인 결벽증세에 자존심이 어지간히도 상했다.

“여름철엔 손만 깨끗이 씻어도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거든.”

진석은 민망한 얼굴로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남편에게서 느껴지는 이상기류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기만 민숙은 손을 씻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남편의 급성 결벽증의 원인이 양말 때문이라는 것만 막연하게나마 짐작이 될 뿐이었다.

“그래유, 사모님. 음식만지는 사람 손은 언제나 깨끗해야 해유.”

노파가 진석을 거들었다.

‘설마, 남편의 발에 그, 그 증세가? 안 돼!’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최면이 된 민숙은 무심결에 전신을 부르르 떨며 남편의 눈에 놀란 동공을 딱 맞추었다.

아내의 마음을 재빨리 읽어버린 진석은 목을 살짝 가로저어 보였다.

‘휴우, 그래 아니야.’

민숙은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며 남편을 부드럽게 흘겼다. 그리곤 남편을 안심시키듯 손을 아주 열심히 씻어댔다.

새들도 나뭇잎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지 ㅇㅇ암자 주변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소리 없이 나무타기를 하고 있던 다람쥐는 민숙이와 노파가 다가가도 하던 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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