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과 시대정신
김두관과 시대정신
  • 이홍구
  • 승인 2012.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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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창원총국 부국장)
“우리는 노무현한테 진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에 졌다”

2002년 대선때 노무현 당시 후보가 기적같은 승리를 일구어낸 후 한나라당 중진의원의 입에서 터져나온 한마디다.

모든 대통령선거에는 그 당시 사회상황을 압축한 키워드가 존재한다. 1997년 김대중의 시대정신이 수평적 정권교체와 민주주의였다면 2002년 노무현의 시대정신은 자유와 반칙없는 사회였다. 2007년 이명박 정부는 친노그룹의 자충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지만 경제와 성장이라는 화두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번 대통령선거도 시대정신의 키워드를 선점하고 유권자들의 공감을 획득하는 대선후보가 승리를 거머질 가능성이 높다. 2012년 현재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정의와 소통’이라고 답했다. 그의 좌우명은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백성은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불공평함을 근심한다)이다. 그래서 그의 대선키워드는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공정과 공존의 복지 패러다임’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그는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을 역할모델로 들었다. 중도좌파 성향으로 집권 후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고 브라질을 견고한 성장의 길로 이끈 서민의 구세주,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김지사는 그런 룰라를 내세워 은연중에 자신을 시대정신의 아이콘으로 설정했다. 출판기념회와 언론 릴레이 인터뷰 등 요즘 그의 발언과 행보도 치밀한 대선전략과 잇닿아 있다. ‘친노 패밀리’가 아니라 ‘친노를 뛰어넘고 싶다’는 김 지사의 발언에는 탈이념 실용주의 노선으로 대선의 핵심변수인 중간층을 끌어안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자수성가형 친서민 이미지와 정의와 소통의 시대정신을 결합시켜내는 지금까지의 대선전략은 대체로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시대정신, 권력의지, 통합능력' 이 3박자를 갖춘'저평가된 우량주'라는 평가에서부터 박근혜 대세론의 대항마로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야권의 기대도 받고 있다.

그러나 이젠 혹독한 시험과 검증의 칼날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과연 그가 그동안 말을 내뱉으면 실천하는 언행일치를 해왔냐는 것이다. 부정직하고 신뢰를 주지 못하는 정치인이 아무리 그럴싸한 시대정신을 외친다해도 그것은 대선전략의 또 다른 포장재일 뿐이다. "임기 동안 무소속으로 남아 도정에 전념하겠다." 이것은 김 지사가 경남도민에게 한 약속이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에 입당을 함으로써 이미 절반의 약속을 어겼다. 도정에 전념하겠다는 약속도 최근의 대선 광폭행보로 물건너갔다. 임기를 채우겠다는 공약 역시 대선에 출마하면 휴지조각이 된다. 지방선거때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며 유권자에게 약속한 공약, 어느 것도 지키지 못하는 셈이다.

김 지사의 후덕한 성품과 외모를 보며 일본 전국시대의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연상하는사람도 있다. 오다 노부나가가 울지않는 새는 죽이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울게 했다면 토쿠가야 이에야스는 새가 울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철학에는 새가 울 수 있게끔 조건을 미리 만드는 치밀한 전략적 판단이 숨어있었다. 그래서 혹자는 이에야스를 곰과 너구리같은 우직한 외모속에 교활한 여우의 지혜를 감춘 냉혹한 실리주의자이자 효웅이라고 평가한다. 토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효웅의 길을 걸을지, 룰라와 같은 성공한 정치지도자의 길을 걸을지는 이제 김 지사가 선택해야 할 몫이다. 룰라는 8년 임기를 마치는 그 순간까지 8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보수와 진보 모두가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한 정직과 실천의 힘이었다. 룰라가 존경받는 것은 신뢰와 실천에 기반한 업적 때문이지 그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민들은 김 지사에게 그가 공약한 ‘대한민국 번영 1번지 경남’을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과를 낸 뒤에 대선에 출마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와 선거의 원칙이다. 김 지사가 기어이 대통령에 출마하기 위해 도지사직을 그만두겠다면 지지율 여론조사를 통해 그동안의 2년 임기를 평가받고 떠나는 것이 경남도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경남도지사로서 도민의 평가를 받는 것을 꺼려하면서 거창한 시대정신을 내걸고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 평가를 받겠다는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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