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
천년의 바람
  • 경남일보
  • 승인 2012.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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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외남 (사천대방초등학교 교사)
하얀 갈매기가 바람을 타고 나들이 간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구름이 너울대는 하늘을 유영하는 갈매기를 타고 나도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 매일 바라보는 풍경이지만 찾을 때마다 선물을 한 아름 안겨주는 고마운 바다다.

바다는 시인을 낳고, 음악가를 기르며, 예술가들의 고향이 되어준다. 삼천포 바다는 박재삼 시인을 키워 주었다. 그는 19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4살 때 어머니의 고향인 삼천포로 왔다. 유년시절, 품팔이꾼 아버지와 생선장수 어머니 사이에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도 못하는 어려운 환경에서 삼천포여중 사환노릇을 해야 했다. 다행히 교장의 도움으로 야간중학교에 입학한 후 국어선생님인 시조시인 김상옥을 만나 시 공부를 하면서 생애의 전환기가 시작되었다. 박재삼 시인은 바다가 보이는 노산공원에 올라 많은 시상을 떠올리고 호연지기도 길렀을 것이다.

박 시인이 김상옥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운명도 바뀌었을 것이다. 삼중고의 시련과 절망에 갇혔던 헬렌 켈러가 사후에도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는 희망의 상징으로서 역사에 길이 남는 것은 그가 설리반 선생을 만났기 때문이다. 교사는 평생 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직접·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우리 반 아이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삼천포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며 날마다 바라보는 바다 또한 얼마나 고귀한 선물인지 깨닫게 해주고 싶어 함께 노산공원에 올랐다. 박재삼 문학관에서 전시실과 시인의 삶을 담은 영상홍보물을 보고 호연재에서 다례체험도 하였다.

아이들이 강사선생님과 공부하는 동안 잠시 문학관에서 나와 노산공원을 거닐었다. 물고기상이 보이는 팔각정에 오르니 멀리 초양도에 걸린 삼천포대교와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쪽빛바다 위에 수놓은 크고 작은 섬들, 해안선따라 늘어선 바위에 부서지는 은빛 파도와 빨간 등대, 잔잔한 수면을 가르며 나아가는 고기잡이배들을 보다가 오래 간직하고 싶어 사진기에 담는데 곁에 선 동백나무 잎사귀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바람이 내 볼을 간질이니/햇살이 머리를 쓰다듬는다/갈매기는 끼룩 끼룩/고기잡이배는 통·통·통/비바람에 흔들려야 더 예뻐지는 나는/바다가 좋아 노산에 사노라네.’

해풍을 맞으며 외로이 서서 님 그리다 잎새 다 떨구어도 슬프지 않은 너! 바다를 품고 사는 삼천포 아이들 마음에 시의 꽃을 피워다오. 내일을 향한 꿈 잎사귀도 무성히 달아주고 하얀 갈매기, 철썩이는 파도와 친구하자고 불쑥 손 내밀 수 있는 용기와 감성도 키워 주오.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아, 보아라 보아라/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사람아 사람아/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탐을 내는 사람아.’(박재삼 시, 천년의 바람)

갯내음 물씬 풍기는 바람을 마시며 시인이 후배들에게 남기고자 했던 바람소리를 조용히 읊조려 본다. 자연이 우리에게 전하고픈 말이 많을 텐데 눈이 어둡고 귀가 멀어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바다를 오감으로 느끼며 영혼의 울림을 시로 읊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노래가 되고 음악이 되어 울려 퍼진다.

/서외남·사천 대방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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