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와 복지
거지와 복지
  • 경남일보
  • 승인 2012.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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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 (진주동명고 교감)
요즘엔 거의 없어졌지만 거지가 있었던 예전엔 아침과 저녁 할 것 없이 식사 때면 어김없이 거지가 찾아왔다. 부엌살림을 책임졌던 선비께서는 남은 밥이 있으면 남은 밥을, 없으면 먹던 밥을 덜어서라도 그들의 쪽박을 채워서 보냈다. 쪽박을 채운 그들의 낯빛은 무덤덤해도 눈빛엔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거지는 ‘살 길이 없어 남에게 구걸하여 거저 얻어먹는 사람’을 말한다. 이 거지가 대표적인 소외계층일 것이고 그들을 보살피는 상태를 복지(福祉)라 한다. 복지사회는 ‘모든 사회의 구성원이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말하기에 이들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은 너무나 당연하다.

학교에도 소외계층의 자녀에게 다양한 교육활동 지원비가 지원된다. 고등학교를 예로 들면 지원되는 종류가 19가지 정도인데, 학비와 교과서 대금, 방과후학교 수강권과 교재대는 물론이고 급식비와 수학여행비, 인강 수강권(교재)과 EBS 방송교재, 컴퓨터 지급과 인터넷 사용료, 개인적 유료 멘토까지 붙여 주는 등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감사하는 마음은 거의 없는 듯하고 이제는 지원되지 않은 부문이 있으면 그것이 되레 이상할 정도까지 왔다.

우리 주위에 망하고 흥한 기업이나 개인에겐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만히 앉아서 흥하거나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보다 더 부지런하고 허리띠를 졸라맨 근검과 절약이 있으면 흥할 것이고, 남보다 게으르고 흥청망청하거나 일확천금을 노린다면 당연히 망할 것이다. 그래서 현대 복지법의 근간이 된 1601년 영국 구빈법(救貧法)에도 가난의 일차적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캐머린 영국총리는 17개 항의 복지 개혁안을 발표했다. 캐머린 총리 개혁안의 핵심은 ‘온정적 보수주의’의 종언이기도 한데 무조건적 혜택 대신에 수혜자들에게 많은 조건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약자보호라는 명분으로 일하는 사람보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혜택이 더 많은 모순을 해결하려 한 것이다.

현대사회에는 다양한 계층이 있고 거기에 불평등은 상존 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불평등 해소를 위한 복지제도는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그 복지의 한계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 과도한 사회보장이 도덕적 해이를 가져와 노동의욕 감소와 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에 결국은 복지 수혜자들의 자존심과 자립심을 높여줄 생산적 복지정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7월 1일자로 개정된 경남교육청 ‘계약제 교원 운영지침’에서 ‘장애인 계약제 교원 중장기 채용계획’을 보면 현재 1.3%에 불과한 장애인 교원 고용률을 2016년까지 2.7%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무릇 복지는 이러해야 한다. 막대한 복지예산으로 무상의 수당만을 지급하는 하는 것은 미봉책인 반면 고용률 증대는 근본적 해결책 중 하나일 것이다. 즉 고기 몇 마리 대신 그 잡는 방법을 일러 주는 것이 바로 생산적 복지일 것이다. 아무 조건 없는 무상복지,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 특히 커가는 소외계층의 자녀들을 쪽박 든 현대판 거지로 만들 참이 아니라면 바람직한 정책적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고, 수혜자들의 처절한 자기반성도 수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가난은 결코 자랑일 수 없으니까.

/문형준·진주동명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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