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29>
오늘의 저편 <129>
  • 경남일보
  • 승인 2012.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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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을 할 때까지만 진석에게 비밀로 하기로.

“그래.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자식을 설마 어쩌라고 하겠니?”

화성댁도 목을 끄덕여 주었다.

필중의 집에 와 있던 진석은 포대기에 쌓인 아기를 보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의 백일잔치에 초대되어 보기도 처음이거니와 잠든 아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선생님께선 아직 소식이 없으세요?”

필중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아기를 들여다보는 진석을 보며 좀 민망한 표정을 했다. 그는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결혼했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암, 나도 이제 아기소식을 하나 만들어야지.”

진석은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나환자라는 사실을 알고도 거리낌 없이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제자를 보면서 용기가 생겼던 것이다. 민숙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졌다. 툭하면 아내에게 둘만의 행복타령을 엮어대지 않았던가.

“제가 비법 하나 가르쳐 드릴까요?”

필중은 싱겁게 웃으며 진석의 눈치를 살폈다.

“허허, 애아범이 된 줄 알았더니 능구렁이가 되었구나.”

진석은 필중의 등을 툭 치곤 그의 집에서 나왔다. 오늘따라 밤하늘엔 별들이 빈틈없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긴긴 여름날의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기 전에 서울 집에 도착해 있던 민숙은 문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이 어미가 말을 꺼낼 테니까 잠자고 있어라.”

같이 서울에 와 있던 화성댁은 딸의 손을 살짝 꼬집었다.

“엇 당신! 장모님도 오셨어요?”

진석은 민숙이와 화성댁을 번갈아 보며 반색했다. 2개월 전 아내는 친정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두어 달 학동에 가 있겠다고 했던 것이다. 화성댁이 건강을 되찾은 것 같아서 무조건 반가웠다.

“오늘 토요일인데 좀 늦었네요?”

진석에게서 약한 술 냄새를 감지한 민숙은 무심결에 웃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걸까?’

적당한 취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남편의 기분이 조금은 들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허허, 우리 사모님, 오자마자 바가지부터 박박 긁네요.”

진석은 소탈하게 그냥 웃었다.

“여보게, 내 물어볼 말이 있는데??.”

사위의 기분이 좋아보이자 화성댁은 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네. 장모님, 뭔지 말씀해 보세요.”

진석은 싱글벙글 웃기까지 했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나?”

“예? 장을 못 먹게 되겠죠?”

“그렇지. 바로 그거라네.”

“예옛? 혹시 민숙이가 아기를 가진 겁니까?”

진석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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