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4인방, 사랑보다 우정에 끌린다
꽃중년 4인방, 사랑보다 우정에 끌린다
  • 연합뉴스
  • 승인 2012.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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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신사의 품격’…마흔한살 우정의 판타지
"119 긴급!".

이 간결한 문자 메시지에 네 친구는 앞뒤 재지 않고 곧바로 한자리에 모인다. 그리고는 어떤 주제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이들이 모이면 싱겁게 장난을 치거나, 서로에게 면박을 주거나 혹은 ''자랑질' 하기 대회'를 보는 듯 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이들은 서로 시간과 삶을 공유하고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수시로 이야기를 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나뭇잎 굴러가는 모습만 봐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손잡고 화장실을 함께 가는 여고생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흔하나. 사회적으로는 '중년'으로 접어들었다는 40대 남성 네 명이 그 주인공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지금 현재만의 모습이 아니다. 정치적, 사회적 목적의 친목을 위해 결성된 모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교시절부터 20여 년을 한결같이 함께했다. 바로 그 지점이 부러운 것이다.

SBS 주말극 '신사의 품격'.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를 표방하고 나선 이 드라마는 마흔한 살 '꽃중년' 사인방의 일과 사랑, 우정을 그린다.

그런데 그들의 일과 사랑은 사실 새롭지 않다. '파리의 연인'부터 '시크릿 가든'까지 로맨틱 코미디에서 독보적인 재능을 과시한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시청자가 '신사의 품격'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 네 남자의 '지고지순한' 우정에 있다.

주인공들도 안다. 스무 살이었다면 사랑 하나에 목숨을 걸 수 있지만 마흔하나인 지금은 사랑보다 지키고 살아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우정은 그중 가장 소중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사랑보다 진한 우정의 판타지 = 영화 '친구'와 '써니'를 대표선수로, 최근 종영한 드라마 '사랑비'까지 소위 '떼거리 우정'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보는 설정이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 우정의 변화를 그린 스토리도 심심치 않게 본다.

그런데 그 수십 년의 세월 속 '결정적인 순간'들은 물론이고 매일매일의 삶을 공유해온 '떼거리 우정'의 이야기는 흔하지 않다. 그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터.

바로 그렇기에 김도진(장동건 분)과 서이수(김하늘)의 가슴 설레는 사랑이나, 임태산(김수로)과 홍세라(윤세아)의 개연성이 높아 보이는 사랑보다 김도진-임태산-최윤(김민종)-이정록(이종혁)의 우정이 더 흥미로워보인다.

'신사의 품격'이 사랑보다 진한 우정의 판타지를 구현하는 지점이다. 연기자들도 이구동성 이들의 우정이 부럽다고 말한다.

이종혁은 "우정의 판타지다. 이들이 항상 붙어 다니며 함께 지내는 모습을 많이들 부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로도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이른바 '꽃중년'이라 불리는 네 남자가 여전히 매일 함께 보낸다는 게 현실적으로는 별로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며 "마흔한 살쯤 되면 저마다 삶과 가정생활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에게는 그런 굴레가 없어 여전히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하숙방에서 '모래시계' 마지막회를 함께 보며 감동한 네 대학생이 20여 년이 흐른 후에도 툭하면 카페에 모여앉아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은 '소통부재'와 '외로움'이 키워드로 등장하는 현대사회에서 사라진 가치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각자 사는 집 대문의 비밀번호가 같고, 유일한 유부남이면서도 사고뭉치인 정록을 위해 투덜거리면서도 늘 거짓 알리바이를 만들어낸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옛여인의 아들로 인해 동시에 '친부'로 의심받는 곤란한 상황에서도 진짜 친부 도진의 존재를 할 수 있는 한 숨겨주는 이들의 우정은 웃는 와중에도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씨가 마른' 잘난 싱글남에 대한 판타지 = '신사의 품격'은 '골드미스'가 넘쳐나는 요즘 한국사회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혼 적령기를 넘긴 잘난 싱글 여성들이 넘쳐나고 그것이 출산율 저하로까지 이어져 사회적 문제가 되지만 '신사의 품격'은 마흔하나가 됐음에도 여전히 결혼하지 않거나 싱글인 '잘난 싱글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현실적으로는 '잘난 남자의 씨가 말랐다'는 말이 흔하게 회자되지만 드라마 속에서만큼은 여성들이 꿈꾸는 결혼 상대가 '떼'로 나오는 것.

재벌2세나 왕세자가 아니어서 현실감이 높은 데다 건축가, 변호사 등 잘난 직업에 멀끔한 외모의 소유자인 이들은 그렇다고 문제를 삼을 만한 성격상의 결함이나 숨기고 싶은 치명적인 하자도 없다. 그런데도 지금 싱글이다.

소위 '골드미스'인 시청자 임수경(41) 씨는 "'신사의 품격'을 보면서 '나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한다"며 "주변에는 남자들이 없는데 드라마에는 모여 있어 속상하지만 그들을 보려고 드라마를 본다"고 말했다.

◇'중년'이라 하기엔 억울한 마흔한 살의 판타지 =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노인'의 기준도 60세에서 70세로 옮아가는 요즘 '중년'의 기준도 뒤로 이동하는 듯하다.

주인공 네 명을 '꽃중년'이라 명명했지만 사실 이들의 모습도, 하는 행동도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온 '중년'의 통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더구나 중년이라 해도 그 초입인 마흔한 살이다. 외부에서 보기에도, 스스로도 '중년'이라는 굴레는 억울할 법하다.

마흔한 살 남자라면 사업을 세 번 말아먹었을 수도 있고 직장을 네댓 번 옮겼을 나이다. 결혼은 물론이고 사별이나 이혼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이고 어디서 자신도 모르던 애가 크고 있을 수도 있다.

바람피우기 딱 좋은 나이라고도 하고, '알것 다 아는' 나이라 연애를 해도 속전속결이고 직설적일 수 있다.

'신사의 품격'은 시종 네 남자의 20대 과거와 40대로 접어든 현재를 비교하며 그들의 변화된 상황과 마음가짐, 책임감 등을 보여준다.

그를 통해 우리가 마흔한 살 남성에게 바라는 '신사의 품격'을 꼽아보는 동시에 실제 40대가 바라고 꿈꾸는 자화상을 그려내며 사랑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판타지를 펼쳐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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