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이를 살리는 범죄예방 설계
아름이를 살리는 범죄예방 설계
  • 경남일보
  • 승인 2012.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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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EU연구소 부소장)
미국 뉴욕은 현대의 가장 대표적인 도시로 손꼽힌다. 특히 심장부인 맨해튼에 빼곡히 들어선 하늘로 쭉쭉 뻗은 초고층 건축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교외를 포함하여 인구가 약 1600만 명에 이르는 거상도시인 뉴욕시티는 자유의 여신상, 타임스퀘어, 센츄럴파크, 박물관 및 미술관, 브로드웨이의 뮤지컬극장 등으로도 유명해 일 년에 수천만 명의 방문객이 찾아온다. 또한 미국의 상업, 금융, 무역, 공업의 중심지로서 대서양 항로에 위치한 중요한 항구도시로 꼽힌다. 이뿐 아니라 국제연합본부가 있어 국제정치의 메카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뉴욕은 미국의 권위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표 도시로서 9·11테러의 주요 목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 최고의 도시에도 그늘진 부분이 있었다. 뉴욕은 1990년 초반까지는 범죄율이 매우 높은 도시였으며 이는 시민과 방문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시에는 야간의 늦은 시간에 도심을 돌아다니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이는 우선 빼곡히 들어선 고층건물이 주는 도시 간의 폐쇄성에서 그 문제를 찾을 수가 있다. 도시의 외부공간이 건축물에 가려서 잘 보이지가 않으니 마음 놓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극심한 ‘도심 공동화 현상’을 들 수 있다. 특히 상업 및 업무지구인 맨해튼의 경우 밤에는 모두 주거지로 퇴근해 사람의 흔적이 드물었다. 따라서 이 시간대가 우범자의 온상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이러다 보니 지하철 등의 많은 공공시설도 야간에는 부랑자나 범죄자들의 전용공간이 되다시피했다. 이러한 불안감 때문에 뉴욕시민 80만 명이 타 지역으로 이주하는 초유의 사태를 빚기도 했다.

이러한 뉴욕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이른바 도시범죄예방 디자인이었다. ‘범죄예방 환경설계’로도 불리는 이 기법은 도시건축적인 디자인 및 설계를 통해 개방감, 이웃 간의 유대감, 자연스러운 감시 가능성, 안전성 등을 높여 범죄발생 기회를 사전에 감소 혹은 제거하는 예방방범 대책의 일환이다. 뉴욕시는 우선 마약중독자들이 모여 있던 폐쇄성을 가진 공원 등의 공공공간의 담장 철폐를 통해 사각지대를 없애 도시의 개방감을 확보했다. 지하철역은 낙서를 지우고 새로운 공공디자인으로 단장해 슬럼 이미지를 없앴고, 범죄신고 시설물 등의 안전디자인 사업을 혁신적으로 시행했다. 또한 우범지역의 야간 보안조명을 더 밝게 하는 노력도 기울였다. 이는 경찰력 강화와 더불어 범죄율 하락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가져왔고, 뉴욕은 매우 안전한 도시로 변모했다.

최근 일련의 여성 납치살해 사건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범죄예방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수원 사건의 경우에도 범행은 사회적 도시환경이 열악하며 공간이 폐쇄되고 소통이 되지 않는 지역에서 일어났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도 이웃으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한계를 가졌다.

이러한 이유에서 외국에 비해 늦기는 했으나 우리 정부도 범죄예방에 관한 내용 추가를 위한 도시 및 건축관계 법률의 개정을 마쳤거나 추진 중에 있다. 앞서가는 몇 지자체는 이미 조례제정이나 건축심의 등을 통해 이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경남도와 지자체는 그 필요성 자체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행정중심 복합도시나 혁신도시 등의 신도시 계획에 있어 범죄예방 설계의 적용이 필수적인 것으로 요청받고 있지만 경남혁신도시는 이를 위한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자식을 둔 우리 모두는 며칠 전 통영에서 발생한 아름이의 사건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범죄예방 설계 및 디자인을 통한 이웃 간의 유대와 공공공간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통한 감시의 가능성이 높았더라면 이웃 아저씨가 그것도 밝은 대낮에 어린 아름이를 납치 및 살해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경찰력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범죄예방과 약자보호를 위한 안전한 정주환경을 설계하고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만진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EU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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