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이야기 하나
지나간 이야기 하나
  • 경남일보
  • 승인 2012.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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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구 (창원보훈지청 보훈과장)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로 울산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직원들과 함께 퇴근하던 길이었는데 사무실 앞 도로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과속으로 달려가던 중 커브길을 돌다가 넘어지는 순간 운전자가 공중으로 뜨면서 시멘트 바닥으로 튕겨 나가는 광경을 보았다. 운전자가 머리와 얼굴에 많은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지켜만 볼 뿐 누구 하나 그 사람에게 다가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오토바이 운전자가 즉사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순간 ‘이 사람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이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으로 그 사람을 무작정 들쳐 업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119 구급차량이 잘 활성화되던 때도 아니었고 근처를 지나가던 택시도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중 마침 지나가던 트럭 앞으로 달려가 무조건 차를 세워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그 트럭기사의 도움으로 그 사람을 기사 옆 좌석에 눕히고 가까운 병원으로 달렸다. 달리는 중에 차는 털컹거리며 심하게 요동을 쳤다. 요동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사고현장에서 출발한 후 약 20여분 뒤 쯤 그 사람이 희미하게 의식을 되찾는 것 같아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운전자를 당시 동강병원 응급실에 인도한 후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을 확인하고 병원을 나왔다. 여름이라 흰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내 옷은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사무실 앞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직원들이 수고했다고 술 한 잔 권하면서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의 행동을 잘했다고 하는 직원과 그 운전자가 사망했을 경우 법적인 책임을 질 수도 있는데 남의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다른 의견이 서로 팽팽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오로지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설령 사망하여 그에 따른 법적인 책임이 있다면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은 많은 사람들이 부상자가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그 광경을 보고 있었음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는 당시의 내 행위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이 때로는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가를 알려주는 하나의 작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무연사(無緣死)도 결국 무관심의 산물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일 것이다. 내가 먼저 우리 이웃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길만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긴 무관심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창원보훈지청 보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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