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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축구인 우정환을 아시나요?진주 출신 한 시대 풍미…1948년 런던올림픽 8강 견인
임명진  |  sunpower@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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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7.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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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64년 전 1948년 ‘런던올림픽’에 최초로 한국축구 국가대표로 출전, 최초의 올림픽 득점, 최초의 올림픽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는데 주축 역할을 했던 고(故) 우정환 선생이 64년이 지난 지금 지역에서 또다시 회자되고 있다.

진주공설운동장 3번 출구 인근에 한 기념비가 서 있다. 우정환을 추모하는 비문이다.

‘번개처럼 빠른 날쌘 철각과 무적의 드리블에다 총알 쏘는듯한 슈팅의 위력으로 한국 축구여명기의 갈색포탄 같은 골로 기여하였고, 오늘 세계 프로축구의 어디에 내세워도 뛰어난 별일 것임을 세상이 애석할 바다’라며 우정환을 칭송하고 있다.

기념비에 새겨진 글귀처럼 우정환은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축구인으로 지금도 평가되고 있다. 우정환, 그는 누구일까.

지금으로부터 64년 전인 1948년 8월, 당시 해방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일단의 축구인 들이 제14회 런던 올림픽이 열리는 영국으로 향했다.

38년간 일제의 핍박을 받아오다 당당히 태극기를 들고 첫 출전한 올림픽이었다.

온 국민이 라디오 앞으로 모여 들었다. 아니, 해방 후 처음으로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각오도 남달랐다. 당시 축구 대표팀은 가난한 나라 살림에 런던으로 가기 위해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해 다시 배를 타고 일본 요코하마, 홍콩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방콕과 캘커타, 아테네, 로마, 암스테르담을 거쳐 런던에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현지적응 훈련과 시차적응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첫 경기의 상대는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였다. 당시 외신들은 신생 독립국인 한국이 멕시코에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라디오로 쏠렸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8골을 주고받는 치열한 경기 끝에 한국이 멕시코를 5대 3으로 꺾고 8강에 올랐다. 시차적응도 안된 선수들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사력을 다해 그라운드를 뛰다녔다. 그 속에는 우정환이 있었다.

▲진주시 신안동 공설운동장 3번 출구 인근에 세워져 있는 고(故) 우정환 선생 기념비 모습. 기념비 뒷면에 적힌 업적 중에 1948년 첫 출전 '런던 오림픽’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오태인기자
당시 34세의 나이로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우정환은 천재축구인이라는 별칭이 따라 붙었다. 진주출생인 우정환은 진주농고(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보성전문(현 고려대학교)을 거쳐 당시 국내 축구계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타고난 공격수로 이름을 떨쳤다.

키 1m78, 몸무게 75kg의 타고난 신체조건을 지닌 우정환은 100m를 무려 10초9로 주파하는 번개 같은 스피드를 자랑했다. 자신이 센터링을 한 뒤 곧바로 문전으로 뛰어들어 슈팅을 했다고 할 정도로 빨랐고, 국가대표 100m 육상선수와 시합해서 이겼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우정환은 학창시절엔 모교를 늘 우승으로 이끈 우승제조기였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진주출신 유학생 주최로 열린 전국중등학교 축구대회가 진주에서 열렸는데, 진농 팀에 속해 있었던 우정환은 전국 30여 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첫 우승을 따냈다.

이후 각종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휩쓸면서 진농 축구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진농 팀은 각종 전국대회를 휩쓸면서 전국에서 가장 막강한 팀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국내에선 가히 그 상대가 없었다.

당시 언론도 우승기가 남대문 이북으로 넘어간 적이 없다며 진농 축구부를 격찬했고, 진주가 축구의 고장으로 명성을 떨치는 계기가 됐다. 그 중심에 우정환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발을 내딛게 됐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선수생활도 잠시, ‘천재요절’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1953년 39세의 한창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아는 지역 축구인 들은 혜성같이 왔다가 혜성같이 사라진 축구계의 별, 이후 서독에서 활약한 차범근 보다 한수 높은 평가를 내릴 정도로 불세출의 공격 선수였다.

전 진주시체육회 사무국장 고봉우(현 고봉우FC 대표)씨는 “당대를 풍미한 특출한 축구스타였다. 오늘날 진주가 전국에 명성을 떨치게 된 발판을 마련하고 진주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전설 같은 선배 축구인 이다”고 회고했다.

축구계의 신화로 남아 있던 우정환의 생애는 1981년 지역축구인들이 중심이 돼 축구는 물론 국내스포츠계 최초의 기념비로 재탄생했다. 비문은 진주가 낳은 시인 설창수씨가 썼다.

런던에서 후배들이 64년 만에 또 한 번의 기적을 꿈꾸고 있다. 올림픽 사상 첫 축구에서 메달에 도전한다. 공교롭게도 첫 상대는 멕시코다. 한국 축구의 기록은 런던에서 만들어 졌다. 한국대표팀 최초의 올림픽 본선 진출, 최초의 올림픽 득점, 최초의 올림픽 8강 진출. 이제 한국 대표팀 최초의 올림픽 메달 획득이라는 새 기록이 '2012 런던올림픽’에서 수립되기를 온 국민이 응원하고 있다.

▲우정환(진주공립농업학교 23회 졸업)

-1914년 진주 출생

-1936년 전조선 중등학교 축구대회 진주공립농업학교 우승

-1947년 일본 삼지역 대항전(고시엔)조선대표로 출전

-1948년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로 첫 출전

-1953년 39세의 나이로 담석증 수술 중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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