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48>
오늘의 저편 <148>
  • 경남일보
  • 승인 2012.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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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시오. 당장.”

말머리와 말허리를 따로 구분하여 챙길 겨를이 없었던 화성댁은 다짜고짜 눈에 불을 켰다.

“아, 죄송합니다. 저흰 빈집인 줄 알고 들어왔습니다.”

남자가 얼굴부터 옆으로 돌리며 서둘러 여자를 밖으로 부축해 갔다.

“아, 죄송합니다.”

남자에게 몸을 의지하며 밖으로 나가던 여자도 굳이 인사를 챙겼다.

“우리 마을엔 빈집 없으니 다른 동네로 가 봐요.”

못을 박듯 말하곤 좀 거리를 두고 그들 뒤를 따라갔다.

‘벼락 맞아 죽을 년아, 젊은것들이 가엾지도 않냐?’

딸년과 사위의 모습이 눈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화성댁은 자기 자신을 향하여 체머리를 흔들었다.

“헛간 같은 데라도 좋으니 이 사람이 출산할 때까지만 여기 좀 있으면 안 되겠습니까? 아기를 낳는 대로 마을을 떠나겠습니다.”

남자가 정중한 어투로 통사정을 했다.

“이 동넨 헛간도 없수.”

화성댁은 너무 빤한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사실 그녀는 나환자 부부를 빨리 마을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생각해만 사로잡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가까운 다른 마을이 어느 쪽인지 그것만이라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아, 그래요. 그래야죠. 저기 저 길 저쪽으로 가 봐요.”

화성댁은 앞뒤 없이 얼굴을 활짝 펴며 정자네 마을이 있는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얼마쯤 가야합니까?”

여자가 배를 감싸며 불안한 얼굴을 하자 남자도 덩달아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길만 건너면 마을이 금방 나와요.”

화성댁은 또 거짓말을 했다. 발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듯 부부의 얼굴에 돌기 같은 것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많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남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여자를 부축하여 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으윽, 아이고 배야!”

별안간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급기야 진통이 시작된 것이었다.

“조금만 참아요.”

남자는 여자를 가까운 집으로 무조건 부축해 갔다.

“안 돼. 안된다니까요. 다른 마을로 가라니까요?”

화성댁은 양팔을 활짝 벌리며 부부의 앞을 가로막았다.

“사람 사는 이치를 아실만큼 아시는 분이 이러시는 거 아닙니다.”

준엄한 표정으로 돌변한 남자는 화성댁을 크게 한 번 흘긴 후 기어이 여자를 빈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허, 헛, 사람 사는 이치라고?”

젊은 사람에게 야무지게 한 방 얻어먹은 화성댁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시작된 산통이라면 순산하길 빌어주어야 했다. 그래야 하루속히 마을을 떠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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