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대해
영국에 대해
  • 경남일보
  • 승인 2012.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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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선 (객원논설위원)
전라남도 고흥반도에서 남쪽으로 40여㎞쯤 되는 지점에 섬이 있는데 거문도다. 온통 동백나무로 뒤덮여 있는 이 섬에 영국군이 처음 나타난 것은 1885년 3월 1일이었다. 영국기를 게양하고 포대와 병영을 쌓는 등 섬 전체를 요새화한 영국군은 섬 주위에 수뢰를 부설하고 전선을 가설하였다. 영국군은 많을 때는 800명에 달했고 정박한 군함도 10척에 이르렀다.

▶당시 일본이 러시아의 태평양함대를 무력화시키자 이에 격노한 차르 니콜라이 2세는 발틱함대를 파견했다. 1904년 10월 러시아를 떠난 발틱함대는 다음해(1905) 5월 말 대마도 해역에 도착했으나 길목을 지키고 있던 도고헤이하치가 이끄는 일본함대를 만나 전멸하다시피했다. 러시아의 태평양함대와 발틱함대 등 두 함대를 침몰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영국은 일본에게 총 4억 1000만 달러의 전비를 제공하고 러시아에 대해서는 제3국의 석탄공급과 원조제공을 저지했다.

▶더욱 거슬러 올라가 14~15세기 세계국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였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가는 뱃길을 튼 두 나라는 무역과 탈취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이 부를 해적질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영국의 노략질에 견디다 못한 스페인의 펠리페 1세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3개국 해군으로 무적함대를 조직하여 1588년 영국원정에 나섰다. 이 무적함대를 칼레 해역에서 쳐부순 것이 해적두목 프랜시스 드레이크였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1만4198명의 병력과 17척의 함정을 보내 우리를 도운 영국이다. 그 영국 런던에서 1908년, 1948년에 이어 세 번째 올림픽이 개최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세 번에 걸친 심판의 오심으로 가슴에 얼룩이 지고 있다.

박동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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