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배워야 할 우리의 정치
스포츠에서 배워야 할 우리의 정치
  • 경남일보
  • 승인 2012.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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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 수필가)
24년 전, 서울올림픽 때 필자는 현장에 있었다. 메인 프레스센터에 부스를 설치하고 취재팀을 이끌면서 경기장을 누볐다. 그때 자주 얼굴이 부딪히는 외국통신사 기자가 있었다. 검은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그는 꽤 알려진 스포츠 전문기자였다. 개막식의 웅장하고 동양적 신비에 매료된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명승부와 신사적 플레이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개최국의 텃세를 부리거나 편파판정이 일어날 때는 어김없이 비판의 기사를 송고하고 그 경위를 나에게 설명하곤 했다. 88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복싱에서 무더기로 금메달을 땄다. 판정제도가 지금처럼 5심제도 아니고 비디오 판독도 도입되지 않았던 때이다. 마침 복싱경기장에서 마주한 그는 서울올림픽은 판정이 대회의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64년 전,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선수단을 파견했던 런던올림픽이 우리로선 퍽 감회가 깊다. 신생국에서 이제는 20-50그룹에 가입할 정도로 국력이 신장됐고 국력에 맞춰 스포츠 강국으로 성장했다. 국민들은 한여름 무더위를 잊고 밤잠을 설쳐가며 펼치는 응원전도 피로를 모를 정도로 연일 승전보를 전해주고 있다. 리딩보드 상위에 랭크되는 성과를 보면서 88올림픽이 오브랩되는 것은 왜일까. 갑자기 24년 전 검은 얼굴의 외국통신사 기자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도 그렇다. 런던에서 들려오는 승전보에 못지않게 국민들을 흥분시키는 오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도에서는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이 심판장의 말 한마디에 전원일치 판정패로 번복됐고, 펜싱에선 너무나 더디게 가는 심판의 시계 때문에 이긴 경기를 빼앗겼다. 여론이 들끓자 ‘특별상’으로 무마하려는 것도 88올림픽 때와 다름없다. 우리나라 선수에게 패했던 유망주에게 최우수 선수상을 주고 무마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오심은 선수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처럼 외신은 오심에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내고 있으니 24년 전의 일이 떠오를 만하다.

스포츠가 감동을 주는 것은 각본 없는 한 편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는 감동이 있고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는 미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역경을 이겨내는 인간승리가 있고 그런 기량을 서로 겨루면서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는 스포츠맨십이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룰을 정해 놓고 모두가 그 룰의 범위내에서 기량을 겨룬다. 룰을 어기면 벌점을 주거나 경기를 중단시키고 패배를 안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도 있지만 오심은 이러한 스포츠정신에 흠집을 내고 선수들을 울린다. 지난 4일 열린 영국과의 축구도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진입한 기쁨도 있지만 심판의 편파판정을 딛고 이긴 값진 승부였기 때문이다. 경기 룰이 자주 바뀌기도 하지만 사전에 공지되어 선수들은 그 룰에 따라 대회를 준비하기 마련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룰은 미리 정해져 경선이 끝나면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 좋은 모습으로 각인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치판에선 게임도중 룰을 바꿔 달라고 야단이다. 중간 레이스에서 불리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경선후보들이 집단으로 룰 변경을 요구하고 아니면 집단 보이콧을 하겠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만약 스포츠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키가 작으니 핸디캡을 달라. 체격조건이 다르니 우선권을 달라, 그렇지 않으면 경기를 보이콧하겠다고 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꼴찌지만 완주하고 전력상 상대가 되지 않지만 경기를 통해 상대방에게 1승을 보태주는 것이 스포츠맨십이다.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승자에게 축하를 해주는 것이 스포츠인 것에 비해 우리네 정치판은 어쩌면 룰도 없는 이전투구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흥행이 안된다는 소리도 마치 변칙룰과 편파판정을 해서라도 약자를 핸디캡을 줘서 데리고 가자는 소리로밖에 안들린다. 룰에 맞춰 자신의 함량을 키우고 능력을 배양해 마침내 메달을 따내는 스포츠정신을 우리 정치권은 배워야 한다. 대회를 하다가 중도에 기권하는 비겁함도 정치권에만 있는 자기합리화일 성싶다. 런던에서 들려오는 인간승리와는 달리 우리 정치판은 지금도 룰에 대한 불만으로 선수들이 농성 중이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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