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53>
오늘의 저편 <153>
  • 경남일보
  • 승인 2012.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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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이라도 찾아보면 먹을거리가 없지 않을 텐데 그래 산부한테 맹물만 먹이는 거요?”

화성댁은 혀를 찼다. 새로 태어난 생명에게 마음이 끌리는 건 인지상정일까? 심보 얄궂게도 아이의 얼굴에 벌써부터 나병징후가 보이는지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 해산어미 옆에서 일부러 뚝 떼어놓은 그 갓난아기에게 눈길이 자꾸 당겨지고 있었다.

“남의 집에 들어와 있는 것도 죄송한데 먹을 것까지 어떻게 손을 대겠습니까?”

천성이 양반이어서인지 산모 남편은 배부른 소리를 했다.

“그럼 산모를 굶겨죽일 생각이었어요?”

화성댁은 툭 쏘아붙였다.

“혹시 가까운 곳에 상엿집 같은 데 없습니까?”

단숨에 미역국을 다 먹어치운 산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 덴 왜 찾는 거요?”

화성댁은 상대의 마음이 너무 빤히 보여서 불퉁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시방 남의 눈치보고 체면 차리고 할 때인가?’

말로는 차마 표현하지 못하고 화성댁은 눈물이 찔름찔름 나오도록 가여운 산모를 가볍게 흘겼다.

“저희들이 여기 계속 있으면 어르신 마음이 불편하실 것 같아서 그럽니다.”

“허허, 배짱이 그리 생겨 먹어가지고 어디 가서 찬밥 덩어린들 제대로 얻어 먹겠수?”

노골적으로 핀잔을 주었다.

“상엿집이 없습니까?”

산모 남편이 영 미안해하는 얼굴로 다시 상엿집 타령을 했다.

‘갓 출산한 산모를 데리고 갈 데가 없어도 유분수지 하필이면 그런 델 찾는 거지?’

어둠이 가려주고 있는 나환자 부부를 훔쳐보며 진석은 목을 갸우뚱했다.

“글쎄, 상엿집으로 가든 피난길에 나서든 세 이레는 지나야 하니까 그런 줄 알아요.”

화성댁은 딱 잘라 말하곤 먼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듯 말했다. 이어 준비해간 마른 미역과 귀한 멸치까지 내놓으며 국 끓이는 방법을 산모 남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시는 사람들일까?’

진석은 또 목을 갸우뚱하며 몸을 집으로 돌렸다.

1950년 7월 25일 새벽 3시 10분, 드디어 민숙은 출산을 했다. 첫아이여서 진통의 시간이 길었지만 아기도 산모도 건강했다.

아기의 다리 사이부터 확인한 화성댁은 무심결에 ‘고추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뒷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진석은 입술을 질끈질끈 씹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환희의 눈물이 진석의 볼 위로 세로줄을 긋고 있었다. 이어 근원을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비몽사몽간처럼 그의 전신으로 휘감아 옴을 느꼈다.

‘이 편안함이 우리 아기의 앞날에 오로지 좋은 징조가 되게 하소서.’

이제 막 아버지가 된 진석은 삼라만상을 향하여 조용히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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