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국제연극제 공연 리뷰
신탁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큰 딸 이피게니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아가멤논.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해 어머니에게 증오를 품은 엘렉트로와 오레스테스. 그들은 죽음과 분노, 배신이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 운명적으로 돌고 돈다.
복수로 가득 찬 그리스 비극 아이스퀼로스의 ‘코에포로이(Choephoroi)를 원작으로 한 ‘청년 오레스테스’가 거창국제연극제 태양극장을 찾았다.
오레스테스의 독백을 시작으로 연극을 시작한다. 순간적인 배우의 몰입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고, 웅장한 음악과 까만 무대 위 홀로 서 있는 그는 햄릿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처음부터 배우들은 강렬한 에너지를 무대 위로 쏟아 붓는다.
비극은 언제나 피를 부른다. 청년 오레스테스도 결국 피의 칼날을 집어들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아이기스토스를 먼저 죽인 다음 자신의 어머니의 심장에 칼을 들었다. 차마 어머니를 찌를 수 없던 오레스테스는 죽은 아이기스토스를 다시 여러번 찌르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그 장면은 증오에 휩싸인 오레스테스가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해 늘 외로움이란 감정에 싸인 광기어린 소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저주의 화살은 어김없이 어머니의 심장에 꽂혔다. 폭풍처럼 휩쓸어 버린 피의 복수. 그리고 찾아 온 고요와 독백. 자랑스러운 아들임을 보여주기 위해 복수의 칼을 들었지만 그건 피에 얼룩진 자랑스럽지 못한 고통이 되어버렸다. 오레스테스 가혹한 운명의 끈을 끊기 위해 마지막으로 칼을 한 번 더 들었다. 바로 자신 스스로 돌고 도는 뫼비우스 띠를 잘라버린 것이다. 이 점이 무엇보다 오레스테스의 고뇌를 매우 잘 표현했다고 보여진다.
타이틀이 ‘청년 오레스테스’라 그런지 극을 이끌고 가는 사람은 오레스테스 한 명에 너무 집중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분노나 절망, 배신 등 무거운 감정을 표출함에 있어 오레스테스 외 나머지는 다소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특히 갈등을 유발시키는 존재인 이아기스토스의 존재가 미약해 절정에서 카타르시스를 이끌어 내기엔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5분 안에 빠르게 스토리를 진행함으로써 느슨함을 없애 관객들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이 극의 매력이다.
강민중기자 jung@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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