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56>
오늘의 저편 <156>
  • 경남일보
  • 승인 2012.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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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를 마구 흔들어대다 말고 민숙은 진석에게 다가갔다. 쪽지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후끈 달아오른 것이었다.

 “제일 가까운 절이 어디지?”

 진석은 뒷걸음질을 치며 중얼거렸다.

 “아기를 절에다 맡기래요?”

 민숙은 볼멘소리로 반문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버릴 수밖에 없는 기막힌 그 사연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백일 아니 한 달 아니 일주일 정도는 어미가 품고 있어야 하지 않겠던가?

 “응, 내가 생각해도 최선책인 것 같다.”

 진석은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안고 가마.”

 화성댁이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아기에게로 다가갔다.

 “어머니, 잠깐만요?”

 ‘이년아 정신 차려!“

 화성댁은 딸이 어줍지 않은 마지막타령을 하며 아기에게 젖이라도 물릴까봐 덜컥 겁이 났다.

 “예, 어머니.”

 민숙은 부엌으로 달려가 퉁퉁 불은 젖을 그릇에다 짜기 시작했다.

 “그래. 그러는 것이 좋겠다.”

 뽀얀 젖과 숟갈을 들고 나오는 민숙을 본 진석은 조금 편해지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헛, 욘석아, 벌써부터 숟갈로 밥 먹냐?”

 숟갈로 입안에 떠 넣어주는 젖을 반은 흘리고 반은 받아먹는 아기를 보면서 화성댁은 그 강한 생명력에 감탄했다.

 “어머니, 딱 하루만 데리고 있으면 안 될까요?”

 슬그머니 잠이 드는 아기를 보면서 민숙은 사정하듯 말했다. 

 가타부타 말이 없던 화성댁은 아기를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떠돌이 나환자 부부의 아기였던 건희는 진석 부부의 집 대문간 방에서 한 달 넘도록 민숙의 젖을 먹고 자랐다.   

 여름에 더위를 잔뜩 먹어버린 탓일까. 9월이 허리를 완전히 걷어 올려도 한낮의 햇살은 뜨겁기만 했다.

 탱크의 사나운 발톱을 용케 피한 논의 벼는 젖니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노릇한 색깔로 물들며 여물어갔다. 들판의 허수아비들은 총성에 놀라 달아난 참새들이 그리운지 시커먼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1950년 9월 15일부터 인천상륙작전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물론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달 28일에는 서울하늘 아래에 다시 태극기를 볼 수 있었다.

 피난을 떠났던 사람들이 속속 그리운 집을 찾아 돌아가기 시작했다. 

 3개월이 넘도록 서울에 갇힌 채 인민군 치하에서 지내야 했던 사람들은 수도 서울이 수복되자 성난 투견으로 돌변했다. 그들은 매순간 인민군 앞에 끌려가 죽음의 순간을 맛보곤 했던 그것에 대한 보복작전을 펼치기 시작한 거였다. 그리하여 후퇴하지 못한 인민군과 그들의 앞잡이 노릇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독기 어린 눈으로 으르렁거리며 다녔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사람 잡는 몽둥이찜질이 시작되었다. 몽둥이세례가 끝난 자리엔 주인 없는 시체가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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