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60>
오늘의 저편 <160>
  • 경남일보
  • 승인 2012.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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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희야, 순희야.”

 목이 메여 옴을 느끼며 형식은 큰소리로 딸의 이름을 불렀다.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공허함에 휩싸였다.

 ‘피난길에 무슨 변을 당한 건 아니겠지?’

 집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짧게 흔들었다.

 ‘괜찮을 거야.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거겠지?’   

 형식은 눈앞에서 돋아나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휴우 살았다!’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형식을 뒤따라간 화심은 목을 살그머니 들어 사립문 안을 엿보다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방향키를 놓쳐버린 사람처럼 멍청히 서 있던 형식은 돌연 몸을 밖으로 돌렸다.

 “또 어디 가려고?”

 급히 발걸음을 옮겨놓은 형식을 따라가며 화심은 툴툴거렸다.

 “아주머니 계세요? 접니다. 형식이입니다.”

 소식조각이라도 듣기 위해 형식은 화성댁의 집으로 간 것이었다.

 집은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흥, 마을을 다 뒤질 참이에요?”

 형식이가 다른 집으로 발길을 돌리자 입을 쑥 내민 화심은 궁둥이를 요리조리 흔들며 따라갔다.

 “누나, 진석이 형, 안에 계세요?”

 형식은 민숙의 집 대문을 마구 흔들어댔다. 피난을 가지 않은 화성댁이 집에 없다면 갈 곳이라고는 딸네 집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누, 누구라고?”

 민숙은 귀를 의심하며 모깃소리로 대꾸했다.

 “나에요. 누나, 형식이??.”

 민숙의 목소리를 들은 형식은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그래에?”

 난처한 얼굴로 돌변한 민숙은 마지못해 대문빗장을 벗겼다.

 “누나, 이게 얼마만이에요!”  

 무심결에 민숙의 손부터 덥석 잡아버린 형식은 상대가 소복차림임을 확인하곤 눈을 홉떴다.

 “얘가 왜 이러니?”

 민숙은 손을 빼내며 목을 저쪽으로 돌렸다.

 ‘흥, 잘들 논다. 툭하면 고향타령을 한 이유가 저 여자한테 있었군.’

 훔쳐보고 있던 화심은 입을 삐죽거렸다. 

 “누나, 어떻게 된 거예요? 설마 아주머니께서 돌아가신 거예요?”

 형식은 화성댁의 집이 비어 있었다는 사실부터 떠올렸다.

 “아, 아니??.”

 민숙은 목을 가로 저으며 바로 어제 서울로 떼어 보낸 용진을 떠올렸다. 앞뒤 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니 어쩌다가? 피난 갈 때 잠시 뵈었을 땐 건강하셨는데요.”

 기어이 화성댁이 운명했다고 단정 지은 형식은 콧마루가 시큰해 옴을 느끼며 목을 옆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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