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65>
오늘의 저편 <165>
  • 경남일보
  • 승인 2012.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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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엣? 장모님께서 어떻게 여길???”

 난데없는 화성댁의 출현에 진석은 당황했다. 아직도 어둠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지만 장모의 손에 밧줄이 들리어져 있다는 것 정도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누가 말리겠나? 어디 이 장모 보는 데서 한 번 죽어보게. 자네 죽고 나면 민숙이 년도 콱 죽어버릴 것이고 난리 통에 줄초상 치르는 일이 뭔 대수겠어?”

 화성댁은 화를 벌컥벌컥 내며 밧줄을 사위의 손에 강제로 쥐여 줄 듯 바짝 다가갔다.

 “장모님, 죄송합니다.”

 진석은 목을 땅으로 떨어뜨린 채 뒷걸음질을 쳤다.

 “하루에도 골백번은 죽고 싶겠지. 왜 아니겠어? 죽을 때 죽더라도 민숙이 년 허락을 받고 죽어야 해. 알겠는가?”

 화성댁은 한탄인지 넋두리인지를 늘어놓으며 얼빠진 사람처럼 휘청거리는 발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남편의 무덤 앞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정신이 든 그녀는 아무렇게나 털썩 주저앉아서 꺽꺽 느끼기 시작했다.    

 동쪽하늘이 희멀건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디 다녀오세요?”

 밧줄 끝을 질질 끌며 오고 있는 화성댁은 보며 형식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서울로 가기 전 인사라고 하기 위해 화성댁의 집 사립문 앞에 막 도착해 있던 참이었다.

 “왜 벌써 서울 집으로 가려고?”

 화성댁은 뜨악한 얼굴로 형식을 보았다.

 “예, 대체 어디 다녀오시기에?”

 형식은 가게를 너무 오래 비어두어 마음이 쓰인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곤 대답을 구하듯 상대의 손에 들리어져 있는 밧줄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필이면 진석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흥, 이거? 저어기서 주웠어.”

 화성댁은 속없는 사람처럼 허공을 가리키기까지 했다.

 “그런 걸 어디다 쓰시려고 주워 오세요?”

 형식이도 바보처럼 반문했다. ‘그냥 죽게 놔두죠. 왜요? 왜? 누날 위해서라도 죽게 놔뒀어야죠.’

 그는 이미 목메는 진석이의 모습과 필사적으로 이를 말렸을 화성댁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대고 있었다.

 “어디다 쓰냐구? 그게 왜 궁금한데?”

 할 말이 궁해진 화성댁은 눈을 허옇게 떴다. 

 ‘이놈아, 그렇게 민숙이 년 아니면 죽고 못 살겠다더니 파르르 끓다 마는 냄비뚜껑이었더냐?’ 

 형식의 마음이 아직도 민숙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일까. 속으론 심술스런 말로 마구 퍼부어대면서도 겉으론 싱겁고 맥없이 뜨뜻미지근하게 웃었다.

 할 말을 잃어버린 형식은 서둘러 인사말을 남기고 길을 나섰다. 

 희멀겋던 주위가 어느 샌가 파르스름해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무덤 앞에 큰 대자로 누워 있던 진석은 이윽고 몸을 일으켰다.

 나병이 발병하고 난 후부터 진석은 낮을 싫어했다. 살갗의 병증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고 낮의 시간은 멀쩡한 사람들의 것이어서 더욱 증오스러웠다.

‘그래, 용진이 백일 때까지만 살아보자고.’

 화성댁이 산을 내려가고 난 뒤 진석은 미수로 끝나버린 죽음의 유혹에 사로잡혀 온몸으로 땅을 치며 발작하지 않았던가. 왠지 오늘은 밝아오는 먼동이 두렵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진석은 이제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뻔했던 오늘의 먼동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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