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66>
오늘의 저편 <166>
  • 경남일보
  • 승인 2012.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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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거울 속의 희망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있었던 진석은 빛을 발견했다. 죽음으로 절망에서 해어나려고 했던 그는 이제 생의 가치를 뼈저리게 느낄 줄도 알았다.



“여보, 용진 아빠!”

 비명을 지르며 방을 뛰쳐나간 민숙은

텅 빈 뒷방을 확인하고 말았다.

 “어머니이! 어머니이!”



새벽으로 늙어가는 달이 누르스름한 색으로 맥없이 웃고 있었다. 사방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진석은 언제까지나 용진의 백일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고추까지 내놓고 찍은 녀석의 사진을 보면서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고 그러면서 마지막 시간을 마음껏 누렸다.

 이윽고 사진을 내려놓은 진석은 유령처럼 움직임의 모든 소리들을 죽이며 방에서 나갔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뒷담으로 향했다. 눈물범벅이 된 민숙의 얼굴이 앞을 가로막았다.  

 ‘따라갈래요.’

 바로 어제 진석이가 소록도로 가겠다고 했을 때 민숙이가 앞뒤 없이 했던 말이었다. 용진의 백일도 끝난 터여서 약속대로 순순히 놓아줄 것이라고 믿었던 그였다.

 ‘약속했잖아?’

 진석은 공허한 얼굴로 맥없이 반박했다.

 ‘같이 떠나자고 했지 오빠 혼자 어디로 보낼 것이라곤 하지 않았어요.’

 민숙에게 마음을 다 들키고 만 것이었다.

 진석은 이제 더는 죽음의 시각을 늦출 수가 없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다행으로 여겨도 될지 모르지만 학동 사람들은 아직도 피난처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때 조용히 사라져 주면 모든 일이 각본대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믿었다.

 ‘용진아! 용진아!’

 소릴 죽여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속귀 깊은 곳에선 아들의 울음소리가 사무치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며 메아리쳐 오고 있었다.

 새들도 새벽잠에 빠졌는지 뒷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조용하기만 했다. 작은 칼을 든 진석은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안 돼. 가야할 이유가 더 많잖아?’

 눈앞을 가로막는 용진의 모습을 보면서 진석은 젖은 목소리로 다짐했다. 살고 싶은 마음이 모기눈물 만큼도 없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용진이 첫돌 때까지만 응?’

 아들의 백일사진을 들고 오던 날 민숙은 이렇게 떼를 쓰듯 말했다. 요약하면 진석에게 생명 연장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커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아비는 세상에 없을 것이었다.

 조물주 앞에 단 한 번도 마음을 열어 보인 적이 없었던 진석이었다. 이제 그는 하늘을 향하여 무턱대고 간절하게 빌어댔다. 그의 가족에게 두 번 다시 나환자가 발생하지 않게 해 달라고.

 첫새벽까지 남편을 감시하다가 안채로 온 민숙은 잠이 살짝 들려다간 닭이 홰치듯 퍼덕거리며 벌떡 일어났다. 시커먼 뭔가에 가위눌린 것이었다.

 “여보, 용진 아빠!”

 비명을 지르며 방을 뛰쳐나간 민숙은 텅 빈 뒷방을 확인하고 말았다. 정신이 완전히 나가 버린 얼굴로 뒷간도 보았다. 

 “어머니이! 어머니이!”

 단숨에 친정으로 달려간 민숙은 사립문이 시야에 들어오기도 전에 화성댁을 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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