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67>
오늘의 저편 <167>
  • 경남일보
  • 승인 2012.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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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으로 잠을 누리고 있던 화성댁은 잠결에 들려오는 민숙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일어나야 한다는 의식이 꿈틀거렸지만 오늘따라 녹작지근한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목만 문 쪽으로 돌렸다.

 “왜 또? 무슨 일이냐?”

 귓전에서 울리는 다급한 딸의 목소리를 들은 화성댁은 괴력을 발휘하듯 벌떡 일어났다.

 “김 서방이 없어졌어요. 엉엉, 흑흑??.”

 민숙은 방문을 와락 열어젖히며 울음부터 터뜨렸다.

 “뭣? 뭐라고? 이 놈이 또?”

 눈을 벌겋게 뜨며 일어난 화성댁은 고쟁이 바람으로 마당까지 숫제 튕겨져 나왔다. 그러면서 똑똑히 보았다. 두려움이 뒤엉킨 얼굴로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고 있는 딸의 애처로운 모습을.   

 ‘언제 없어졌냐?’ 

 그러나 화성댁은 입을 꾹 다물며 가여운 딸을 꼭 끌어안았다. 사위가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더욱이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수도, 얼씨구나! 하고 춤을 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를 포기해 버리고 싶은 거였다.

 “빨리 찾아야 해요. 용진 아빨 찾아야 한다구요!”

 민숙은 화성댁의 팔을 거칠게 뿌리치며 달아났다. 사위를 포기해 버리는 어머니의 마음이 빤히 보이고 있어서 서글픔이 사납게 끓어오른 것이었다.

 “흥, 열녀 났네, 열녀 났어.”

 어미마음을 모기눈물만큼도 알아주지 않는 딸년이 야속해서인지 화성댁은 눈물을 한 움큼 쏟았다.

 어느 순간 화성댁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딸의 발자국 소리를 뒤쫓기 시작했다. 딸년 하나 데리고 험한 세상 살아오면서 불현듯 간절하게 마음을 긁곤 하는 바람이 있었다. 바보천치라도 좋으니 남편의 이름으로 옆에 사내가 있었으면 하는 그것이었다. 

 이른 새벽 기차역에 도착하여 학동에 막 당도하던 형식이가 번개같이 달려 나가는 화성댁을 보았다. 그는 진석에게 변고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주제모를 편안한 기분에 잠기며 민숙의 집으로 천천히 걸었다.

 ‘형, 잘 가.’

 여유를 부리며 민숙의 집으로 방향을 잡던 형식은 뜬금없이 머리를 저어대기 시작했다.

 진석이가 숨어 지내던 그 굴로 달려간 민숙은 그곳도 텅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눈을 허옇게 까뒤집으며 동서남북으로 목을 돌려댔다.

 “이 사람, 이 사람  대체 어디 간 거야?”

 속절없이 딸을 추격한 화성댁은 발바닥에 불이라도 붙은 사람처럼 풀쩍풀쩍 뛰어다녔다.

 아버지의 무덤으로 간 진석은 한 단 아래쪽에 파 둔 자신의 무덤 속에 들어가 있었다. 용진을 안고 할 가족의 손에 나환자의 몸을 만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형식은 뭔가에 끌려가듯 김 씨의 무덤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한 아이의 아비인 그는 아버지가 된 진석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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