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소리의 향연
책장소리의 향연
  • 경남일보
  • 승인 2012.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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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주 (진주시의원, 복지산업위원회 간사)

늦은 밤 유난히도 달빛이 곱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에 익은 풀벌레 소리에 잠시 책을 덮고 베란다 창가로 나가본다. 인기척을 들은 것일까? 갑자기 소리가 뚝 그쳤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넘실넘실 파도를 타듯 바람결에 따라 우는 귀뚜라미 한 마리. 간간이 들려오던 목청 좋은 귀뚜라미소리도 깊고 푸른 밤하늘 아래에선 날개 달린 꽃씨가 된다. 밤바람을 따라 춤을 추는 날개 달린 꽃씨가 된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목청소리는 더 높아만 가고 멀리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벌써부터 새벽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새벽이 와도 그칠 줄 모르는 소리들의 향연, 책장 넘기는 소리와 풀벌레 우는 소리로 또 하루의 아침이 빗장을 연다. 오늘 아침 맞이하는 이 신선한 아침이 밤새 넘겨진 책장들로 인해 더 풍성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한 권의 책으로 낮과 밤이 소리와 소리의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있고 갈급했던 우리들의 마음밭으로는 감성과 인성의 단비를 내릴 수 있게 하는 계절이다. 21세기 국가 경쟁력의 핵심요인이 ‘지식자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독서의 계절인 이 가을에 우리는 국가 경쟁력을 뛰어넘어 나를 위한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한 권의 책으로 문화의 향기를 뿜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이다. 굳이 선진국의 독서율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은 책을 읽지 않는 사회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결국 우리나라의 지식 경쟁력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을 자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 성인 독서량은 2008년 12.1권에서 꾸준히 떨어져 2011년 9.9권으로 집계됐고, 1년에 책 한 권이라도 읽는 지표인 독서율은 성인의 경우 2008년 72%에서 꾸준히 하향추세를 그리다가 2011년에는 66.8%로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독서인구의 감소가 도서관이라는 하드웨어가 성장하고 있는 와중에 일어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국내 공공도서관은 783개로 인구 6만 5000명당 1개 수준으로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 미국의 3만 2000명 중 1개나 일본의 4만명 중의 1개와는 차이가 있지만 그 틈을 마을문고나 작은도서관 등 생활 밀접형 도서관들이 메우고 있는 상황에서 도서관과 도서관 보유장서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책 읽는 사람은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심각하게 대두되는 문제는 책 읽는 습관이 대물림되어 책을 싫어하는 부모가 책 싫어하는 자녀를 만든다는 것이다. 자녀의 책 읽는 모습을 보는 게 모든 부모들의 바람이지만 정작 자신은 책을 멀리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난 3월 독서인구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침체에 빠진 출판계를 구하고자 2012년 올해를 ‘독서의 해’로 선언하고 3월에는 대대적인 선포식을 갖기도 했다. ‘책 읽는 소리, 대한민국을 흔든다!’,  ‘하루 20분씩, 일년에 12권 읽기’ 하루 20분, 일년에 12권 읽기는 올해가 2012년인 점을 착안해서 만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이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고 독서의 해 중반을 훨씬 넘어선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그동안의 행보는 거의 잠행에 가까웠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독서의 해’를 맞아 책정된 정부예산은 국민 1인당 10원꼴인 5억원이다. 무엇을 어떻게 더 설명할 수 있겠는가? 독서인구의 저변확대는 물론이고 사회 곳곳에서의 책 읽는 분위기 조성조차 제대로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창의력을 키우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며 지혜를 얻는 데는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 어릴 때 읽은 글 한 줄이 우리 아이들에겐 푸른 미래가 되어 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고, 이 아침 나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할 지 스스로의 답을 찾아나서야겠다.

노병주 (진주시의원, 복지산업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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