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주 (진주시의원, 복지산업위원회 간사)
늦은 밤 유난히도 달빛이 곱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에 익은 풀벌레 소리에 잠시 책을 덮고 베란다 창가로 나가본다. 인기척을 들은 것일까? 갑자기 소리가 뚝 그쳤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넘실넘실 파도를 타듯 바람결에 따라 우는 귀뚜라미 한 마리. 간간이 들려오던 목청 좋은 귀뚜라미소리도 깊고 푸른 밤하늘 아래에선 날개 달린 꽃씨가 된다. 밤바람을 따라 춤을 추는 날개 달린 꽃씨가 된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목청소리는 더 높아만 가고 멀리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벌써부터 새벽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새벽이 와도 그칠 줄 모르는 소리들의 향연, 책장 넘기는 소리와 풀벌레 우는 소리로 또 하루의 아침이 빗장을 연다. 오늘 아침 맞이하는 이 신선한 아침이 밤새 넘겨진 책장들로 인해 더 풍성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국내 공공도서관은 783개로 인구 6만 5000명당 1개 수준으로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 미국의 3만 2000명 중 1개나 일본의 4만명 중의 1개와는 차이가 있지만 그 틈을 마을문고나 작은도서관 등 생활 밀접형 도서관들이 메우고 있는 상황에서 도서관과 도서관 보유장서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책 읽는 사람은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심각하게 대두되는 문제는 책 읽는 습관이 대물림되어 책을 싫어하는 부모가 책 싫어하는 자녀를 만든다는 것이다. 자녀의 책 읽는 모습을 보는 게 모든 부모들의 바람이지만 정작 자신은 책을 멀리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난 3월 독서인구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침체에 빠진 출판계를 구하고자 2012년 올해를 ‘독서의 해’로 선언하고 3월에는 대대적인 선포식을 갖기도 했다. ‘책 읽는 소리, 대한민국을 흔든다!’, ‘하루 20분씩, 일년에 12권 읽기’ 하루 20분, 일년에 12권 읽기는 올해가 2012년인 점을 착안해서 만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이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고 독서의 해 중반을 훨씬 넘어선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그동안의 행보는 거의 잠행에 가까웠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독서의 해’를 맞아 책정된 정부예산은 국민 1인당 10원꼴인 5억원이다. 무엇을 어떻게 더 설명할 수 있겠는가? 독서인구의 저변확대는 물론이고 사회 곳곳에서의 책 읽는 분위기 조성조차 제대로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창의력을 키우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며 지혜를 얻는 데는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 어릴 때 읽은 글 한 줄이 우리 아이들에겐 푸른 미래가 되어 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고, 이 아침 나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할 지 스스로의 답을 찾아나서야겠다.
노병주 (진주시의원, 복지산업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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