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69>
오늘의 저편 <169>
  • 경남일보
  • 승인 2012.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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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해가 벌건 혀를 동산 위로 내밀고 있었다. 세상의 온갖 것들의 겉모습이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진석을 그의 집 뒷방에 뉘고 나오는 형식의 옷에는 온통 피로 얼룩져 있었다.

 “혀, 혀 형식아??.”

 민숙은 떨리는 음성으로 형식을 부르기만 할 뿐 의사를 불러달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있었다.  

 “빨리 가서 옷 갈아입고 몸 깨끗이 씻어라.”

 울먹이는 민숙의 음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성댁은 형식의 등을 밖으로 떠밀었다. 지금 사위의 생사보다 형식에게 나균이라도 달라붙었을까 봐 그것이 더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물끄러미 진석을 내려다보고 있던 형식은 말없이 몸을 돌렸다.

 ‘쯧쯧, 속도 없고 배알도 없는 놈??.’

 화성댁은 쓸쓸해 보이는 형식의 등 뒤에다 한숨을 버무렸다. 학동에 뻔질나게 오곤 하는 그 켯속을 잘 알고 있어서 가슴 한쪽이 아려오는 것이었다.

 읍내로 달려간 형식은 막 문을 여는 병원으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환자 맞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간호사가 놀란 동공을 둥글렸다. 이어 범법자라도 만난 듯 두려움이 뒤엉키는 얼굴로 옷의 피를 힐끔거렸다.      

 “사람이 동맥을 끊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사 비슷한 것도 챙길 여유가 없었던 형식은 다짜고짜 물었다.

 “에엣? 지혈부터 해야죠?”

 간호사도 얼떨결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 다음은요?”

 “잘 모르겠는데요?”

 울상으로 돌변한 간호사는 출입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가 형식에게 끌어왔다.

 “선생님, 동맥을 끊었다고 다 죽는 건 아니겠죠?”   

 때마침 의사로 여겨지는 남자가 출입문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본 형식은 앞뒤 없이 들이댔다.

 무뚝뚝한 얼굴로 형식에게 눈길을 그었던 상대는 간호사에게 눈짓을 보내곤 곧장 진료실로 들어가 버렸다.

 “들어가 보세요.”

 간호사가 불쾌감을 짓씹고 있는 형식에게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아는 사람이 동맥을 끊었는데 일단 지혈은 해 놓았습니다. 괜찮겠죠?”

 형식은 최고로 차분한 목소리로 가라앉혀 말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죠?” 

 비로소 형식의 옷에 피가 묻은 이유를 알겠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경우라뇨? 어떤 경우 말입니까?”

 “조기에 발견했으면 가망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힘들겠죠.”

 “의식이 없는 것 같았는데 피를 얼마나 흘렸을까요?

 “그야 모르죠.”

 이제 더는 상대해 주지 않겠다는 듯 의사는 얼굴을 저쪽으로 돌렸다.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살릴 방법을 딱 한 가지만이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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