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71>
오늘의 저편 <171>
  • 경남일보
  • 승인 2012.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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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내줘라. 살아 있었으면 진즉에 깨어났을 것이다.”

 화가 난 화성댁은 형식에게 그었던 눈길을 지게 있는 쪽으로 끌어갔다. 전쟁 중인 데다가 나환자여서 삼일장을 챙기고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고맙게도 사위가 스스로 자기 무덤까지 파두었으니 일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알아차린 형식은 헛간 앞에 세워져 있던 지게를 가지러 갔다.

 “안 보내. 못 보내. 이대로는 안 돼.”

 민숙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년아, 죽은 사람 끼고 있을래?”

 “예, 끼고 있을래요.”

 “이년이 영 미쳤군, 미쳤어.”

 화성댁은 혀를 내두르며 허공으로 눈을 돌렸다.

 “누나, 이제 형 보내줍시다.”

 형식은 지게를 방문 앞까지 가지고 갔다.

 민숙은 대꾸대신 방문을 닫아버렸다.

 “죽고 싶으면 얼마든지 죽어보세요. 우리 용진이 첫돌이 지나면 그때 묻어드릴 테니까.”

 민숙은 진석의 귀에다 대고 싸늘하게 말하며 이빨을 바드득 갈았다.

 ‘헛, 민숙아 너 왜 이러니? 도대체 너 왜 이러는 거야? 제발 날 포기하란 말이야.’

 진석은 숨소리를 완전히 죽였다. 죽은 체하고 있으면 결국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삼일 후 화성댁과 형식은 진석이를 옮길 관을 뒷방 앞에 들이댔다. 민숙이를 위하여 형식이가 준비한 관이었다. 삼일씩이나 끼고 있었으니까 이젠 시신을 내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민숙은 진석을 내놓을 수 없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이년아, 송장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화성댁은 문고리를 마구 잡아당기며 온갖 욕을 다 해댔다.

 형식은 강제로 문을 따고 말았다. 죽은 사람 곁을 꼼짝없이 지키고 있는 민숙이를 더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던 거였다.  

 “너, 정말 내 손에 죽고 싶니?

 관부터 들이미는 형식을 보며 민숙은 눈에 쌍심지를 켰다.

 화성댁도 눈에 불을 켜며 방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양팔을 벌리며 형식을 가로막는 딸의 팔을 뒤로 꺾어선 움켜잡았다. 

 “예, 죽고 싶어요.” 때를 놓치지 않고 형식은 방안에 관을 밀어 넣었다.

 “콱 죽어버릴 거야.”

 목에 힘을 불끈 주던 민숙은 급기야 혀를 깨물어버렸다.

 “이, 이년이!”

 그와 동시에 화성댁이 딸의 입아귀를 왁살스레 거머쥐었다. 

 소리 내어 울 수도 악다구니를 써 댈 수도 없었던 민숙은 입을 반쯤 벌린 채 무기력한 동공만 굴리고 있었다.

형식은 서둘러 진석을 입관했다. 관 뚜껑을 집어 들곤 불현듯 목을 갸우뚱했다. 의혹이 급히 충전된 눈으로 관 안을 노려보았다, 진석의 얼굴은 누런빛이 감도는 흰빛을 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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