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73>
오늘의 저편 <173>
  • 경남일보
  • 승인 2012.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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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은 놀란 눈으로 민숙과 화성댁을 번갈아 보았다.

 화성댁은 딸과 관을 번갈아 보며 눈을 허옇게 떴다.

 형식은 나무못을 꺼내들었다. 누나가 정신을 잃고 있을 때 진석의 장례를 치러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순희 아범!”

 화성댁이 또 북어 찢는 소리를 냈다. 이어 형식을 밀어내곤 관 두껑을 열어 젖혔다.

 “아, 아니 장모님!”

 안도의 한숨을 막 쉬고 있던 진석은 무심결에 눈을 번쩍 떠 버렸다.

 “허허, 몹쓸 사람! 이년도 죽었으니 같이 가. 죽어서도 둘이 실컷 붙어 다니란 말일세. 허허, 허허허??.”

 화성댁은 실성한 사람처럼 허허거리며 막무가내로 민숙을 관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다. 

 “민숙앗!”

 진석은 벌떡 일어나며 목청껏 아내를 불렀다.

 “누나, 형 살아났어요. 빨리 정신 차리세요.”

 형식이도 민숙의 양어깨를 잡아 흔들기 시작했다.

 정신이 번쩍 든 화성댁은 사발 가득 냉수를 떠와선 딸의 얼굴에 뿜어댔다.

 민숙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민숙아, 내가 잘못했어. 제발 정신 차려. 이제 두 번 다시 죽을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을게.”

 진석은 축 늘어져 있는 민숙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허허, 마침 잘 되었네. 비싼 관도 준비되어 있겠다. 김 서방, 이년 장례를 후딱 치러버리세. 멀쩡한 젊은이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난리 통에 이 년 하나 뒈졌다고 지나가던 소가 본들 그 큰 눈 하나 껌벅거리겠어? 죽은 년은 빨리 묻어주는 것이 상책이야.”

 또다시 실성한 사람이 되어버린 화성댁은 눈물을 흩뿌리며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엮어댔다.   

 “예, 장모님. 저도 같이??.”

 진석은 도로 관 속으로 들어갔다.

 “형, 미쳤어?”  

 형식이가 어이없이 소리를 팩 질렀다.

 “허허, 그래?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려고 굿판 벌리는데 산 작자 소원하나 못 들어주겠어. 어떤 년은 타고난 복이 지지리도 많아서 웬수뎅이들을 한꺼번에 묻게 되었구나. 이 꼴 저 꼴 다 본 년이 무슨 꼴을 더 보겠다고 꾸역꾸역 살고 있냐? 이참에 콱 같이 죽어버려야지.”

 화성댁은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어버릴 기세로 한탄하며 민숙을 또 관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형식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화성댁을 만류했다.

 “용진 아빠. 어머니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민숙은 모깃소리로 진석과 화성댁을 불렀다.

 세 사람은 놀란 눈을 홉뜨며 민숙을 보았다. 이어 어이없는 미소가 그들의 입가에 쿡쿡 찍히고 있었다.       

 마당 위로 놀러온 잠자리 떼가 얇은 날개 사이로 오후의 하늘을 비추며 둥둥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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