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사벌 처녀 ‘송현이’의 환생
비사벌 처녀 ‘송현이’의 환생
  • 경남일보
  • 승인 2012.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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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학교 교수)

마음을 사로잡을 이야기가 없는 관광공간은 관광지로서 의미가 없다.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관광지에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관광지의 외형적인 매력만으로 관광객들을 감동시키기 어렵다. 사진만 찍고 관광지의 경관을 대충 훑고 지나가는 종전의 관광과는 달리 현대의 관광객들은 관광지에 깊이 몰입하고 진정한 체험을 즐긴다. 이러한 관광패턴의 변화에 맞추느라 많은 자치단체들은 지역의 전설이나 민담을 이용하여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공모전을 여느라 바쁘다. 자치단체들이 스토리텔링 공모전에 몰두하는 것은 관광객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스토리를 개발하여 관광에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일면 타당해 보인다.

관광객, 이야기에 흥미 없는 이유는

하지만 공모전을 통해 개발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관광객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많은 민담과 전설적인 인물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관광해설 목적으로 개발되었음에도 관광객들에게 흥미 있는 관광지는 드물다. 이야기가 개발되어도 여전히 관광지가 관광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이야기는 있되 이야기와 관계를 맺는 관광공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인가 창녕의 송현동 고분에서 발굴된 1500년 전의 인골을 복원한 흥미로운 사례는 관광지와 스토리의 관계를 이해하게 하는 단초를 준다. 발굴팀은 발굴과정에서 4구의 순장인골 중 온전하게 보전된 16세 정도의 여아로 추정되는 인골을 복원하기로 하였다. 순장인골은 뼈에 남아 있는 의학적 증거를 통해 3D 스캔·디지털 복원 등을 기반으로 인체조형학적인 재구성 과정을 거쳤다. 인체모형은 복제뼈를 만들고 인체통계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근육과 피부를 복원하여 실제 사람같이 만들었다. 탄생한 여인의 생김새는 턱뼈가 짧고 목이 긴 미인형의 순하게 생긴 얼굴에 허리가 21.5인치밖에 나가지 않는 날씬한 여인이었다. 복원팀은 송현동 고분의 이름을 따 ‘송현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1500년 전의 여인 송현이가 환생한 것이다.

이 송현이의 탄생은 1500년 전 무슨 사연으로 이 무덤에 묻히게 되었는지 우리들에게 많은 호기심을 준다. 순장 소녀 송현이는 발굴 당시에 무릎이 많이 닳아 있는 정황으로 보아 시종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비사벌의 지배자가 죽어서도 자신을 섬기고 봉사할 사람을 함께 데려감으로써 삶이 영원하기를 바랐던 순장풍습을 짐작케 한다. 송현이는 죽어서도 주인을 가까이에서 모시던 시녀가 다음 세상에서도 봉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자세로 그대로 누워 있다. 정말 16세 꽃다운 나이 송현이의 죽음이 스스로 선택한 것인지 마음을 사로잡는 궁금증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음을 이끄는 이야기가 없는 관광공간은 죽은 관광지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야기의 주인공과 대상이 관계하는 공간으로서 관광지가 복원되지 않으면 매력은 크게 떨어진다. 관광 스토리의 발굴은 극적인 이야기로서 긴장감과 재미를 불어넣는데 쓰임새가 크다. 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이야기가 살아난다.

관광지 복원과 이야기 발굴 함께해야 

관광목적의 스토리는 계속 발굴되어야 한다. 하지만 단기적인 목적으로 지어낸 스토리텔링을 관광에 활용하고자 한다면 현장 스토리(place story)의 약화만 가져 온다. 다시 말해 관광지의 공간이 훌륭하게 보전되고 잘 복원되었을 때 주인공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생생하고 재미있다는 뜻이다. 비사벌 처녀 송현이의 환생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송현이가 잠들었던 고분 속의 유물과 수습된 인골들, 그보다 생생하게 환생한 ‘송현이’가 있기에 이야기가 흥미 있고 재미있지 않은가. 관광지를 복원하고 가꾸어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관광해설용 이야기들만 지어낸다고 관광객들의 마음이 움직일까.

 

고원규 (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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