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찮은 풀포기도
저 하찮은 풀포기도
  • 경남일보
  • 승인 2012.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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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지난 여름, 그 끈적대던 무더위와 불볕들을 생각하면, 저 잡초의 목숨이 아무리 하찮다고 해도 어찌 숙연해지지 않으랴. 저것들의 짧은 생애에 비하면 지난여름의 무더위는 너무나 가혹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힘이 없고 여린 목숨일수록 조용하고 지혜롭게 처신하도록 창조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람들도 이기적이거나 또는 대단한 부자, 기막힐 정도로 힘 있는 사람들보다는 마땅히 지녀야 할 기본 조건도 못 갖춘 이들이 오히려 밝고 넉넉한 표정으로 자신과 주변을 편안하게 해주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나 풀포기나 생명은 마찬가지. 계절이 바뀔 적마다 신의 섭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이가 어찌 있으랴마는, 그래서 진화론보다 창조론이 더 인정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없이 많은 실수와 잘못을 거쳐서 비로소 과학도, 절대자 신이 사람과 저 미물에게 똑같이 소중한 가치를 두고 각자의 몫을 이루어 내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저 하찮은 생명 한해살이 식물도 여름하늘을 잘 견뎌내었고 지금도 제몫의 과업을 다하기 위해 살아가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들 중에는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몫으로 해왔다고 생각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 단 하루도 자신의 몫의 일을 성실히 하긴커녕, 마지못해 투덜대며 자신의 일을 해왔고, 자신의 몫의 일이 있다는 감사의 마음보다, 왜 이리도 힘든 것들만 얽혀 있는가 하고 탄식만 해오지 않았는가. 늘 어디론가 떠나 살 허망의 꿈에만 목말라하고 지내 왔으며, 깊고 적막한 곳에 살다가 산자락의 잡초처럼 잦아지고 싶지는 않았는가. 하늘에 한 자락 흰 구름을 타고 무지개를 쫓아가는 엉뚱한 헛꿈만 꾸면서 이 나이까지 지내 왔으니, 어찌 아름다운 삶이 되랴.

 말도 없고 손짓도 없는 식물들 앞에서, 아니 길가에 밟히며 돋아 자라서 꽃피우고, 씨앗을 맺고 익히며 살아가고 있는 가장 쓸모없는 풀포기도 자신의 삶에 충실할 적에 우리는 왜 헛된 꿈으로만 살아야 했는가. 다만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되어 이제야 자신을 돌아 살펴보게 되는 것이라면, 그래, 많은 것을 탐내지 말자. 크고 빛나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몫을 그려내어 그것에 감사하며 충실해지자. 우리의 몫이 무엇인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자신의 생활이 자신의 몫이 아니랴. 성실히 살다가 그 결과로 위대한 목표가 성취되면 자신의 몫을 해낸 결과일 것이다.

 이를테면 저 풀포기가 싹이 터 움이 돋고, 자라면서 잎과 줄기를 튼튼히 해온 그의 생활이 제 몫이었듯이, 그래서 저만의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익히듯이, 그 과정이 곧 그의 생활이고 그의 몫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들의 생활도 우리들의 몫이 아닌가? 사람이 원대한 꿈과 크나큰 생의 목표를 가지고 그를 위해 생활을 희생시키는 것도 훌륭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즉 매일의 생활에 충실한 것도 다 위대한 삶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제 몫을 다하는 목숨은, 아무리 작고 하찮은 풀포기라 해도 준엄한 삶의 모습이며, 대자연의 섭리이며, 창조자의 미소, 그 큰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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