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86>
오늘의 저편 <186>
  • 경남일보
  • 승인 201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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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숙이 누님, 저 형식입니다.” 

 다락방을 찾아내진 못했다. 아기의 울음소리도 계속 들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무턱대고 목소릴 낮추어 내어 보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가 나지 않았냐?”

 여주댁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니까 피난을 가자고 그랬잖아요? 어린것을 데리고 언제까지 숨어 지낼 수 있겠어요?”

 동숙은 어두워지면 서울을 빠져나가자고 했다.

 “그럴 순 없다.”

 딱 잘라 말했다.

 “학동으로 가지 않으면 되잖아요?”

 어머니의 속내를 환히 꿰뚫어보고 있던 동숙은 둘러대지 않고 바로 말했다.

 “일없다. 지난번에 삼 개월 만에 서울을 되찾았으니 이번에도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여주댁은 벽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형식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소리를 내 보았다.

 “어머니, 형식이가 왔나 봐요.”

 동숙은 귀를 세우며 다락방 문을 조금 열었다. 방문 앞에 서 있는 형식이가 보일 턱이 없었다. 목을 아래로 조금 내밀어 보았다.

 “누, 누님!”

 형식이가 먼저 파마머리를 양쪽 귀 옆으로 부스스하게 내려뜨리며 목을 빼는 동숙이를 보았다.

 “어머니, 형식이 아니 순희 아범이 왔어요.”

 동숙은 안도의 한숨부터 쉬었다.

 “뭐라고? 순희 아범이 왔다고?”

 오늘따라 여주댁도 형식이를 어지간히도 반겼다.

 “피난을 가신 줄 알고 막 돌아가려던 참이었어요.”

 형식은 용진을 보기 위해 여주댁에게 다가갔다. 진석의 모습이 아기의 얼굴에서

돋아나고 있었지만 그는 민숙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넌 왜 피난을 가지 않았니?”

 동숙이가 먼저 궁금증을 훅 털었다.

 “아뇨. 피난을 가다가 돌아왔습니다.”

 형식은 어두워지는 틈을 타 한강을 함께 건너자고 했다.

 동숙은 당장 그러자고 했다.

 여주댁은 목을 가로로 흔들었다. 딸에게 갈 테면 혼자 가라고 딱 잘라 말했다.

 형식과 동숙은 함께 설득작전에 나섰다.

 “학동에 들리지 않으면 되잖아요?”

 동숙은 피난행렬을 따라 곧장 남으로 가면 된다고 몇 번씩이나 말했다.

 여주댁은 고집스레 목을 가로저었다. 서울에 남아 있으면 모를까 지지대고갯길로 가면서 코 옆에 있는 학동에 들리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자식을 잊고 사는 부모가 세상에 있을까. 더욱이 몸이 성하지 않는 자식은 잠시도 가슴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법이었다. 그녀는 아들을 그리며 남몰래 눈물을 짓씹다간 손자를 보면서 이를 악물고는 해야 했다.

 “이러고 계시다 무슨 일을 당하시면 어쩌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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