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88>
오늘의 저편 <188>
  • 경남일보
  • 승인 2012.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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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약이 독했던지 진석은 눈꺼풀 위로 쏟아져 내리는 졸음에 시달리고 있었다. 밤에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낮잠을 자지 말아야 했다. 의식이 몽롱해지는 얼굴로 자꾸만 눈을 껌벅거렸다.

 ‘안 돼, 안 돼. 다 나아가고 있었는데 왜 이래? 민숙아, 민숙앗!“

 하필이면 그때 온몸이 빨갛게 부어오르는 것을 보면서 진석은 비명을 질렀다. 떨리는 손으로 거울을 집어 들었다. 징그럽게 우둘투둘해진 얼굴도 한층 더 벌겋게 보였다,  ‘민숙아. 그 약, 그 약 어디서 났어? 누가 가져온 거야?’

 진석은 앞뒤 가리지 않고 양약을 덥석 받아먹었던 것을 후회했다.

 ‘형식이 너 이 자식,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형식이의 이름을 부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이건 또 뭐야? 으아악!’

 등을 긁어대다 말고 비명을 질렀다. 그 손에 구더기가 한 줌 들리어져 있었다.

 ‘에잇, 저리가, 저리가란 말야, 으아악악!’ 무조건 구더기를 팽개쳤다.

 이번엔 가슴을 긁어댔다. 눈 아래로 허연 구더기가 우두둑 떨어졌다.

 양손을 눈앞으로 가져갔다. 갈퀴로 변해 있었다. 그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얼굴로 허리를 비틀어댔다. 팔과 다리를 마구 흔들며 털어대곤 했다.

 그의 온몸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땅바닥에 몸을 던진 그는 흡사 간질발작이라도 하듯 팔다리를 퍼드덕거리며 전신을 부르르 떨어댔다.

 “가위눌리나? 용진 아빠!”

 어머니가 준 약을 들고 뒷방으로 간 민숙은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들썩이는 남편을 보았다.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진석의 입에선 알 수 없는 신음소리만 새어나오고 있었다.

 민숙은 다시 그를 불렀다.

 잠을 깰 기미는 보이지 않고 얼굴표정만 너무 가엷게 일그러졌다.  

 아무도 없는 주위를 살그머니 둘러본 후 민숙은 남편에게 손을 뻗었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던 그의 목소리가 속귀에서 울렸다.

 때맞추어 진석은 몸을 크게 한번 뒤척였다.

 흠칫 놀란 민숙은 손을 도로 거둬들였다. 기어이 그의 어깨를 꼭 잡았다. 찌르르한 느낌이 전류처럼 전신으로 전해져 옴을 느끼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간 길게 날숨을 내뿜었다. 남편을 깨우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손으로 눈길을 그었다. 다른 한손으론 그의 그 손을 잡았다.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하던 그의 음성이 들렸다.   

 남편의 손을 젖가슴으로 끌어당긴 민숙은 눈을 감아버렸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만은 남편의 몸이 너무 그리운 아내가 되어 있었다. 다리가랑이 사이가 젖어 옴을 느끼며 민숙은 남편의 손을 놓아주었다.

 “언제 왔어?”

 잠을 깬 진석은 피곤한 기색이 역역한 얼굴로 아내를 보았다.

 “가위눌렸어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꾸하며 민숙은 남편의 얼굴을 살폈다. 양약까지 먹고 있어서인지 이마의 반점도 많이 작아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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