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벌어지는 ‘의과대학 신설’ 논란
대선 앞두고 벌어지는 ‘의과대학 신설’ 논란
  • 경남일보
  • 승인 2012.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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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희 (경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장)

최근 우리나라 의사 수가 적정한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한국의 의사 수와 의대 정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적으니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의사 수를 늘릴 필요가 없다는 쪽에서는 현재 의과대학 졸업생 수는 OECD 평균수준이며, 의사 수는 2023~2024년에 OECD 평균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쪽의 주장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겠지만 왜 이러한 논란이 갑작스럽게, 그것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대두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어느 수준의 의사 수가 적정한 것일까. 최선의 의료혜택을 받으면서 비용은 덜 내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의사 수가 증가하면 한쪽에서는 혜택이 늘어난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비용이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양쪽의 주장은 영원한 평행선일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과거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은 정치적으로 해결되었던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41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포함)과 12개의 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 포함)이 설립되어 있다. 41개 의과대학 중 22개가 1980년 이후에 설립되었다. 제5공화국 동안 11개교, 문민정부 동안 9개교가 설립되었다. 특히 문민정부 때 설립된 의과대학은 정원이 40~50명 수준으로 그야말로 ‘미니 의대’다. 의과대학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명 정도의 교수와 500병상 이상의 대학병원 그리고 교육시설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에 비유될 정도이다. 기업형 병원을 모태로 하거나 대기업과 연관되어 있는 의과대학들은 그나마 사정이 괜찮지만, 그 외의 대학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부실 시비에 휘말리는 의과대학까지 생겨났다.

요즘 대학가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조만간 구조조정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때에 의과대학을 신설하여 대학의 덩치를 키우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의과대학이 신설되면 작은 대학이 단숨에 존재감 있는 큰 대학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 구조조정에서 살아 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일까. 인천·목포·창원지역 등 여러 지역에서 의과대학을 신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건행정학자들이 불을 지피고 보건복지부가 연기를 피우고 있다. 연말 대선을 맞아 각 지역의 표심에 예민한 정치권에서는 각 지역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대선후보 캠프의 공약에 의과대학 신설을 포함시킬 태세다. 하지만 의과대학 교육은 매우 전문적인 영역에 속하며, 천문학적인 투자가 수반되어야 하고, 좋은 의사를 양성할 수 있는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한 분야이다. 계산된 전략으로 작전을 하듯이 해치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심사숙고한 후 대응책을 찾아도 늦지 않다.

대학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예산낭비와 중복투자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 내의 구조조정과 대학 간의 통합이 요청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지금은 서로가 잘하는 부분에 대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때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자칫 잘못하면 건드리지 않아야 할 부분을 건드리는 우를 범하기 쉽다. 노자에 나오는 ‘약팽소선(若烹小鮮)’이 문득 생각난다. 작은 생선은 때를 기다려 뒤집어야 한다. 작은 생선을 이쪽저쪽 마구 뒤집다보면 부서져서 먹을 게 남지 않는다.

한재희·경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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