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는 건 시작하기는 쉬워도 매듭짓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위험한 게임이다.
이런 사랑 게임을 그린 18세기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이미 다섯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국내에서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배용준이 남자 주인공을 맡은 '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2003)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번에 나온 여섯 번째 '위험한 관계' 역시 기존의 이야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색다른 맛을 내는 건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 덕분이다.
특히 이 영화는 한국과 중국의 대표 미남·미녀 배우들의 만남으로 일찍부터 관심을 모았는데 완성된 영화에서 장동건과 장쯔이, 장바이쯔(張柏芝)의 조합은 역시 상당한 긴장감을 일으킨다.
상하이 최고급 호텔을 소유한 갑부이자 외모까지 출중한 '셰이판'(장동건 분)은 모든 것을 가진 남자들이 흔히 그렇듯 소문난 바람둥이다. 여자를 하룻밤 데리고 놀다 차버리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어떤 여자든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아직 정복하지 못한 여자가 있다. 상하이 최고의 신여성인 '모지에위'(장바이쯔). 빼어난 미모에 수완까지 갖춰 돈도 많은 여자다. 가진 것이 많은 그녀 역시 남자들을 쉽게 갈아치우고 셰이판의 구애에도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다.
뚜펀위를 유혹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셰이판과 어려울 거라고 냉소하는 모지에위는 내기를 벌인다.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벌이는 밀고 당기기의 게임이 이 영화의 동력이다. 남자가여자의 마음을 얻으려고 쓰는 수법이야 어차피 빤한 것이지만, 마음을 훔치려는 쪽과 뺏기지 않으려는 쪽의 기싸움이 팽팽하다. 그 치열한 합을 이뤄낸 두 배우 장동건과 장쯔이의 연기가 볼만하다.
특히 장동건은 타고난 매력을 이번 영화에서 마음껏 뽐냈다. 멜로 영화의 남자 주인공으로 누구보다 더 잘 어울리는 외모를 지녔지만 그동안 전쟁 액션 영화들을 찍으며 애써 감춰왔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자신의 '미모'를 거침없이 드러냈고한껏 무르익은 연기로 드라마틱한 캐릭터를 표현했다. 배우 장동건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허진호 감독의 섬세한 연출도 돋보인다. 한국에서 멜로 영화로 가장 이름난 그는 중국에서 투자된 제작비로 실력을 발휘했다.
1930년대 상하이 상류 사회를 고급스럽게 재현하며 조명과 세트 미술, 의상까지꼼꼼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 배우들의 호흡을 밀도 있게 끌어낸 솜씨도 좋다.
다만, 닫힌 이야기 구조 속에서 전반부의 흡인력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동력이 떨어지는 점은 이 영화의 한계다. 가장 극적이어야 할 주인공의 고통과 후회, 요동치는 감정의 파고도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느낌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은 만듦새를 갖춘 '위험한 관계'는 한 분야에 특기를 가진 두 나라의 감독과 배우들이 만나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한-중 합작영화의 좋은 예로 남을 것 같다.
11일 개봉. 상영시간 111분. 청소년관람불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