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소싸움의 추억과 구경의 미학
진주소싸움의 추억과 구경의 미학
  • 경남일보
  • 승인 2012.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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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학교 교수)

진주 사람이면 ‘개천예술제에 소싸움 구경 간다’는 말을 못 알아듣는 이 없다. 진주 사람이면 누구나 가을걷이가 끝난 추석 명절 전후에 펼쳐지던 소싸움을 즐겨왔다. 소싸움은 그만큼 진주 인근 경남을 통틀어 큰 구경거리였다. 그래서 그런지 소싸움 구경하는 미적 감각과 수준이 참으로 높다. 소싸움을 구경하는 수준이 높은 것은 아마 긴 진주소싸움의 역사만큼 소싸움 관전의 연륜도 함께해 와 구경꾼들의 눈매가 매서워져서 일 것이다.

소싸움은 서민들 구경거리의 백미

역사적 자료로 진주소싸움이 시작된 것은 1883년경부터였다. 어쩌면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그렇지 그보다 훨씬 오랜 전부터 소싸움을 즐겼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자료에 의하면 추석 명절 전후에 진주성내와 성밖의 마을대항 소싸움이 크게 열렸다고 한다. 이러한 소싸움 판은 그 다음에 도동면과 진주 읍내의 대항전으로, 도동면과 금산면으로 장소와 상대를 바꾸어 가면서 연이어 확산되었다. 진주에서 소싸움판은 그 이후에도 시절이나 장소를 불문하고 자주 열렸다. 소싸움은 진주 서민의 역사와 함께한 대표적인 구경거리이자 누구나 즐기던 민속놀이였다.

역사의 연륜만큼이나 소싸움장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소싸움을 즐길 줄 안다. 소싸움장의 구경꾼들은 싸움 시작 전부터 싸움소의 전적에서부터 어느 동네 누구의 소이며, 어떤 주특기를 가졌는지 훤하게 꿰고 있다. ‘저 눔은 매가 세’하면, 곁에 구경꾼은 ‘저 소 눈매 좀 봐. 보통이 아닌 걸’하면서 바로 응수한다. 소싸움의 열전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 구경꾼의 눈매는 한층 날카로워진다. 그들의 눈은 촌각의 움직임도 놓치는 적이 없다. 한 관객이 ‘어 저눔 숨골이 거치네. 혀도 빼고’하면, ‘오줌 줄기에 똥까지 내놓는 걸 보면 그쪽이 빨리 끝장날 걸’ 하면서 자기가 응원하는 소의 편을 든다. 그러다가 일순간에 승부가 갈리면 구경하는 이 누구 할 것 없이 환호와 탄식의 함성을 쏟아낸다.

소싸움 구경꾼들의 눈매는 연륜이 깊은 관전자들로부터 전수된 것들이다. 연륜이 깊은 구경꾼들은 싸움 잘하는 소의 특징을 볼 줄 안다. 그들이 내놓는 좋은 싸움소에 대한 견해는 ‘앞다리가 짧아야 밑을 파기 좋아 싸움에 유리하다거나, 뿔 사이가 좁고 뿔각이 좋아야 매 때리기에 능하다거나, 목 둘레가 건실하고 몸길이가 길어야 유연성이 좋아 되치기에 능하다’와 같은 외양을 두고 논평하는 것들이 대다수이다. 하지만 뿔 모양에는 상관없이 눈매, 꼬리길이, 빛깔, 다리맵시와 같이 근거는 없어도 오랜 관전의 경험을 통해 획득된 것들도 많다.

이러한 구경꾼들의 관찰력은 소싸움 구경을 위한 미학의 정수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이 때로는 흔들릴 때가 있다. 옛적 남강 백사장의 구경꾼들은 자기가 응원하고 싶은 소한테 힘을 보태느라 상대소의 눈에 모래를 끼얹기도 하고, 상대소의 고리를 잡아당기기까지 했다. 물론 잠시 냉정을 잃은 구경이었지만 승부욕을 부르는 구경꾼의 ‘승벽’은 오히려 소싸움의 재미를 훨씬 풍성하게 해왔다.

구경꾼들이 있어야 민속 소싸움이다

진주소싸움 구경의 연륜은 130년 가까이 쌓여 왔다. 일제 강점기에 삼일 만세운동이 거세지자 남강 백사장에 모이는 소싸움 판의 구경꾼들이 겁이 나 소싸움을 잠시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도 진주소싸움의 열기를 막을 수 없어 1927년 다시 부활한다. 엊그제 풍요로운 축제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120번째 민속 소싸움대회가 끝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세월 속에서 연륜 깊은 노인들의 날카로운 관전평과 한바탕의 풍자와 해학의 어울림 속에서 소싸움의 아름다움을 즐겼다. 소싸움을 즐길 줄 아는 눈매가 매서운 구경꾼들이야말로 소싸움 전통의 미를 만들어 가는 주인공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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