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의 자격
시청자의 자격
  • 경남일보
  • 승인 2012.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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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 (경남과학기술대 신문사 편집국장)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있다. 가게의 매상을 올려주는 손님을 위해서라면 왕처럼 대접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로 음식점이든 옷가게든 주변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문구이다. 우리는 TV에서도 비슷한 말을 듣곤 한다. 바로 ‘시청자가 주인’이라는 말이다. 시청률에 따라 프로그램의 존망이 결정되는 만큼 TV 프로그램에 있어 시청자는 왕으로 모셔야 할 고객인 셈이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러한 멘트를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들은 한겨울 계곡물에 입수를 하거나 벌칙을 통해 가전제품을 기부하고, 기습적인 무료행사를 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고 시청자는 그것에 시청률로 보답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유대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사건이 일어났다. 예능 프로그램인 MBC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준비한 연말 콘서트가 돌연 취소된 것이다. 공연날짜가 무한도전 방송시간과 겹친다는 것과 지금까지의 연말 콘서트와는 달리 유료라는 점 그리고 비교적 높은 티켓가격 등에 대해 일부 팬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고 결국 공연취소가 결정됐다. 이로 인해 공연을 기대하고 예매한 많은 사람들까지 피해를 봤고, 주최 측도 금전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리고 또 다른 출연자가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프로그램 하차를 선언하면서 촬영이 취소되는 등 프로그램과 시청자 모두에게 상처만을 남긴 채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간 무한도전은 비인기 스포츠 종목에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우리나라의 음식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광고제작과 요리에 도전하고, 매년 달력을 만들어 판매해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이웃돕기에 기부하는 등 재미와 감동, 공익성까지 갖춘 방송으로 다수의 고정적인 시청자들을 확보해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했다. 그리고 시청자와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전례 없는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나 역시 무한도전의 애청자로 챙겨보지 않은 특집이 없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후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와 댓글들을 볼 때면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그램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은 물론이고 특정 멤버의 퇴출을 요구하는 서명과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 댓글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주인’이라는 말을 일부 사람들은 다르게 받아들여 동물을 기르는 주인 마냥 프로그램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가르치려 들기 시작한 것이다. 편집에 실수가 있다면 조작의혹을 일으키고, 출연진의 말과 행동에 작은 오해만 있어도 정의의 사도가 되어 추궁하고 나섰다. 시청자의 입장으로서 방송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지적은 당연한 권리이지만 도를 넘어선 시청자들의 ‘주인의식’은 결국 자신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준비한 출연자들의 무대를 ‘너희라면 당연히 무료로 해야 되는 것 아니냐?’라는 매정한 태도와 함께 걷어차고 말았다. 가수의 콘서트, 유명한 뮤지컬 공연에는 투자하는 티켓 값을 자신이 애청하는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공연에 쓰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옳지 않은 주인의식이다.

시청자가 있고, 그렇기에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이 있음으로써 시청자들은 주말 밤 가족들과 혹은 친구들과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방송과 시청자는 극단적인 상하관계가 아닌 상호간의 존중이 필요한 관계라는 것을 알아야 진정으로 ‘시청자가 주인’이라는 말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김태경·경남과학기술대 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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