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07>
오늘의 저편 <207>
  • 경남일보
  • 승인 2012.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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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숙아, 우리 뛰어갈까?”

온몸으로 추위를 느끼고 있던 진석은 속도 없이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아뇨. 뛰지 말고 달려가요.”

또 우스갯소리를 한 그녀도 팔짝팔짝 뛰기 시작했다.

길 양옆으론 산이었다. 평평한 곳이 가끔씩 나타나더라도 인가는 없어서 둘이 굿판을 벌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친구의 의원은 방배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늑장을 부리던 겨울 아침 해가 눈부신 빛을 내뿜기 시작할 때 민숙이와 진석은 남태령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고개만 넘으면 사당동이었다.

“자긴 누님 댁으로 가서 용진이 보고 있어. 난 친구 만나고 갈 테니까.”

사당동이 시야에 들어올 때 진석은 불쑥 말했다. 방배동이 이웃하고 있는 곳이어서 목적지에 다 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바늘 가는 데 실 가야죠.”

용진의 이름을 듣는 순간 민숙의 마음은 자석에 끌려가듯 시누이집으로 당겨졌다. 그러나 몸은 남편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아, 알았으니까 떨어져 걸어.”

말하면서 그는 의도적으로 아내에게서 떨어졌다.

친구가 운영하는 하얀 단층건물인 병원이 시야에 들어올 때 진석은 걸음을 늦추며 긴장된 얼굴로 민숙을 돌아다보았다.

“다 잘 될 거예요.”

진석의 마음을 바로 읽어버린 민숙은 남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 그럴 거야.”

그도 아내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출입문의 손잡이를 잡는 그의 손에 땀이 끈적거리고 있었다.

민숙이가 뜸을 들이고 있던 진석을 대신하여 병원 출입문을 밀었다. 좀 굳은 표정으로 잡아당기기도 했다.

“쉬는 날인가 봐요.”

급기야 허탈한 얼굴로 돌변한 민숙이가 진석을 향하여 얼굴을 돌렸다.

“일요일도 아닌데??.”

진석이도 문을 밀었다간 잡아당겼다. 역시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목을 짧게 가로 흔들었다.

“피난 갔다 잘못된 건 아닐까요?”

금방이라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말 것만 같은 얼굴로 민숙이가 구두덜거렸다.

“아, 내 정신!”

자신의 머리를 쿡 쥐어박은 진석은 병원 왼쪽의 골목길로 급히 들어갔다. 살림집이 딸려 있다는 사실이 생각난 것이었다.

둘은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그 살림집 대문을 보며 서로를 향하여 아예 울상을 지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대문을 열어놓고 살겠던가? 더욱이 이곳에선 훤한 대낮에도 대문을 열어놓고 사는 집이 없었다. 요약해서 사람이 안에 없다는 뜻이었다.

혹시나 하는 얼굴로 둘은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방문이 다 열리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집은 비어 있은 지 오래되어 보였다.

“어디로 이사를 갔을까요?”

민숙은 너무 침울해 보이는 남편을 향하여 억지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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