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08>
오늘의 저편 <208>
  • 경남일보
  • 승인 2012.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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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그 친구 말없이 이사를 갔군.”

아내의 웃음이 가여웠던 진석은 어이없이 한바탕 웃었다. 이어 희망이 급히 충전된 얼굴로 돌변해선 병원 쪽으로 달려갔다.

주제모를 그 희망에 전염된 민숙이도 남편 뒤를 따라갔다.

진석은 병원건물 앞쪽을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남편의 마음을 알아버린 민숙이도 병원건물의 양옆까지 이 잡듯이 눈으로 수색했다. 병원이전에 관한 안내문 은 물론 그런 것 비슷한 문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진석이가 먼저 실망어린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친구 분 피난 갔다 아직 안 돌아왔나 봐요.”

아랫배 깊숙한 곳에 있는 숨을 한꺼번에 노골적으로 훅 내몰아쉬며 민숙은 공허하게 중얼거렸다.

“변고를 당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진석은 진심으로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종로나 동대문 쪽으로 이사를 갔겠죠. 이 동네는 워낙에 후미지잖아요?”

민숙은 동대문 쪽으로 가 보자고 제의했다. 병원이 많지 않던 터여서 병원표시 간판만 보고 친구 집을 찾으면 한나절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동숙은 동대문시장에서 포목점을 하고 있었다. 여주댁과 용진이와 함께 사는 살림집은 그곳에서 가까운 뒷골목에 있었다.

“다음에??. 오늘은 맥 빠진다.”

아내의 속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진석은 학동으로 돌아가자고 하며 앞장섰다.

“동대문으로 한 번 가 봐요, 네? 형님도 볼 겸.”

아들의 이름이 목구멍까지 치밀고 올라왔지만 남편의 아픔을 건드리게 될까 봐서 꾹 참았다.

“당신은 우리 용진이 안아보고 천천히 와. 난 집에 먼저 가 있을게.”

진석은 담담한 어조로 말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을 갔다.

“그럴려구요”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없었던 민숙은 딱 잘라 대꾸하고 전차 타는 곳이라도 찾으려는 듯 두리번거렸다. 저만치로 멀어지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아쉬운 눈초리로 힐끔거리기는 했다.

동숙의 포목점에서 막 나오고 있던 형식은 지친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는 민숙을 보았다. 설레는 가슴을 누르며 누나가 가까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형식아, 여긴 웬일이니?”

민숙은 반색하며 다가갔다.

“우리 딸 옷 한 벌 해 주려고요.”

들고 있던 옷감을 자랑하듯 들어 보이며 싱겁게 웃었다.

“딸내미 옷감만 끊었니?”

형식의 손에 들려져 있는 옷감을 보며 민숙은 곱게 흘겼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며칠 전 정자는 딸과 함께 학동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 아뇨. 용진이 보러 왔어요?”

그는 떠듬거리며 말을 돌렸다. ‘그 사람 것도 끊었어요.’라고 하는 말이 왜 쉽게 나오지 않는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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