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서 피워낸 희망 '터치'
벼랑 끝에서 피워낸 희망 '터치'
  • 연합뉴스
  • 승인 2012.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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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 감독 신작…김지영 호연 돋보여
장르 드라마

개봉 2012 .11 .08

감독 민병훈

배우 유준상, 김지영, 윤다경, 이승연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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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부부는 본디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사격선수였던 동식(유준상 분)은 알코올중독을 끊지 못해도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총은 사람한테 쏘는 게 아니다”라며 준엄하게 꾸짖을 줄 알았다.

 그의 아내 수원(김지영)은 쪼들리는 살림에 돈을 벌기 위해 간병 일을 하고 있지만, 일곱 살 딸 아이에게 “아픈 사람들은 도와줘야 하는 거야”라고 가르칠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식은 사립학교 여자 이사장의 술시중을 들고 만취한 상태로 차를 몰다 한 여학생을 친다. 음주뺑소니로 경찰에 잡혀간 남편을 빼내기 위해 수원은 늙은 환자의 성관계 요구를 들어주고 돈을 마련한다.

 영화 ‘터치’는 이렇게 착하고 평범했던 소시민 부부가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인간성마저 뒤틀려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내일모레면 학교에 들어갈 딸 아이를 생각하며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는 엄마의 노력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그 몇 푼을 더 벌기 위해 여자는 불법 의약품을 환자에게 떠넘기며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병원 원무과장에게 갖은 욕을 들으며 모멸감을 느껴야 한다.

 간병 일이 아닌 다른 곳이라면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될까. 이 사회에서 서민들이 살아가며 부딪히는 조건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립고등학교에서 사격부 코치로 일하는 남편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계약직인 그는 학교와 재계약이 될지 안될지 전전긍긍하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학교의 최고 권력인 이사장의 강압으로 술을 마시고 성추행까지 당한다.

 알코올중독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출발하긴 하지만, 주인공이 겪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보고 듣는 얘기다.

 영화는 이렇게 두 주인공을 절망에 가까운 상황으로 몰고 가지만, 다행히 파국으로까지 던지진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속에 지닌 마지막 양심과 인간애로부터 작은 희망은 싹틀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특히 수원이 우연히 죽어가는 여자 환자를 발견하고 이 여자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며 어떻게든 도와주려 뛰어다니는 모습은 눈물겹다.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고 오히려 악연으로 마주친 타인에게 잠시나마 진심을 다해 헌신하면서 본래 갖고 있던 인간성을 지키고 희망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결국 남편인 동식에게 전이돼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위기에서 그를 건져낸다.

 영화의 전체 톤은 어둡고 무거운 편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우리 사회 곳곳의 추한 단면을 건드리고 있어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 이야기 전개도 촘촘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된다.

 두 주연배우 유준상, 김지영의 연기도 돋보인다. 특히 김지영은 후반부로 갈수록 진심을 담은 절실한 눈망울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간 안방극장에서 주로 활동해 왔지만, 스크린에서도 빛날 수 있는 배우임을 증명한다.

 이 영화는 데뷔작 ‘벌이 날다’로 1998년 토리노국제영화제 대상과 비평가상, 관객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뒤 두 번째 작품 ‘괜찮아, 울지마’로 2002년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에서 특별언급상과 비평가상을 받은 민병훈 감독의 신작이다.

 앞선 두 작품과 함께 2007년 ‘포도나무를 베어라’로 두려움에 관한 3부작을 끝낸 감독은 이번 작품 ‘터치’를 시작으로 ‘사랑이 이긴다’ ‘설계자’라는 제목으로 생명에 관한 3부작을 만들 예정이다.

 8일 개봉. 상영시간 99분. 청소년관람불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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