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죽고 싶은 노인이 많은 나라
빨리 죽고 싶은 노인이 많은 나라
  • 경남일보
  • 승인 2012.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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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석 (전 언론인)
우리 동네 남자들 중 최고령자인 정수(택호) 할아버지(90)는 “어서 죽어야 할텐데…”라는 말을 자주 하신다. 처음에는 그 말이 노인들이 흔히 한다는 거짓말 쯤으로 여겨졌으나 요즘은 정말 자신의 죽음을 간절히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됐다. “나는 아홉살 때 부모가 돌아가시고 배운 것 없고 물려받은 것 없었지만 남의 것 탐내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자식들 키우고 잘 살았다. 이제 더 살아봐야 아내와 자식들 괴롭히는 것밖에 할 게 없다”는 말에서 자신의 죽음을 진짜로 바라고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자신은 모르시지만 폐암 말기 진단이 내려진 정수 할아버지는 “무엇보다 통증이 심할 때마다 늙은 아내와 자식들을 괴롭히는 게 미안해 하루빨리 죽고 싶다”고 말하신다.

얼마 전 중풍으로 부산의 병원에 장기입원 중인 선배(75)를 문병 가서는 “아무도 모르게 나를 좀 죽여줄 수 없겠느냐”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하자 그 선배는 “살아 있다고 해도 나을 것 같지 않고 가족들 고생시키고 살림만 절단낸다”면서 부탁(?)을 하는데 진땀을 흘렸다.

치매나 중풍 같이 장기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에 걸린 노인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또 고령자들 모임에 가면 “제일 큰 소원은 편안한 죽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명예도 돈도 아니고 ‘오래 앓지 않고 갑자기 자는 듯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이다.

“친한 사람들끼리 몹쓸 병에 걸리면 서로 안락사시켜 주는 계를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등의 농담을 듣다 보면 모처럼 만난 동창모임의 분위기도 금방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OECE 국가 중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자살요인을 정확하게 분석한 자료는 보지 못했지만 자살 노인 중 상당수는 외롭고 가족에게 짐이 되는데 부담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장기입원이나 간병인의 보살핌이 불가피한 환자가 크게 늘고 있는 현실에서 경제적 여유가 없는 난치병 환자에게 수용시설을 제공하는 등 정부의 종합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 같다. 노인들에게 몹쓸 병에 걸려도 가족뿐만 아니라 나라에서 뒷바라지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 진정한 노인복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인사들이 노인복지 대책이라고 내놓은 고령자 연금 인상 등 즉흥적인 대책으로는 쉽게 삶을 포기하는 노인의 숫자를 줄이는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인대책은 현재의 노인들만을 위한 대책이 아니라 장래 노인이 되는 사람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책이어야 한다. 이 대책의 수혜자에는 청장년 난치병 환자까지도 포함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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