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25>
오늘의 저편 <225>
  • 경남일보
  • 승인 2012.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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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에 물을 제대로 부었는지 몰라?”

화성댁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오지랖 넓은 얼굴로 솥뚜껑을 자연스레 열었다.

“아, 예. 그냥 대충 담길 만큼 부었습니다.”

표정이 조금 풀리며 김가는 아궁이에서 한 발짝 떨어졌다.

“으윽, 아, 음??.”

알 수 없는 낱말조각을 떨어뜨리며 화성댁은 입으로 손을 가져갔다. 물이 좀 작은 것 같다고 말해 주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울렁거리고 있는 속 때문일까. 몸과 마음이 영 불편했다.

솥 안에는 구렁이들이 들어 있었다. 숙희 엄마가 폐결핵 환자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잘 먹어야 낫는 병이었는데 한 번 걸리면 쉽게 낫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전염이 잘 되는 병이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뒤따라 나온 김가는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부탁이라니?”

상대의 속내가 빤히 보였지만 볼멘소리로 반문했다.

“동네 사람들에겐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해서요.”

김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날까 봐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나?”

부지중에 툭 쏘아붙였다.

“용진 외할머니께서만 말씀을 하시지 않으면??.”

김가는 말꼬리를 길게 끌며 양미간의 주름을 잔뜩 모았다.

“허, 글쎄. 내 입이야 내가 단속하면 되겠지만 낮말은 새가 듣는 법이라서 말일세.”

화성댁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남의 비밀을 숨겨주고 어쩌고 하며 갈등할 때가 아닌 것이었다.

마을에서 가까운 뒷산엔 예부터 구렁이가 산다고들 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김가가 시도 때도 없이 뱀을 찾으러 다닐 것은 너무 빤한 일이었다. 김가와 은신처인 굴로 왕래하는 사위가 서로 딱 마주칠 수도 있었다. 아이무덤을 파헤치던 그녀 자신도 김가에게 들켜버릴 수 있었다.

‘안 돼. 쫓아내야 해.’

팔을 앞뒤로 사납게 휘저으며 걸었다. 우물가에 가서 넌지시 말을 흘려놓으면 마을사람들이 앞장서서 김가를 몰아내 줄 것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년!’

화성댁은 자신을 증오했다.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무슨 소리? 지금 내가 인정 따질 때야?’

사위의 존재가 탄로 날 것을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싸늘한 얼굴로 돌변한 화성댁은 우물 쪽으로 목을 돌렸다.

“어머, 용진 외할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우물가에 앉아 점심거리 푸성귀를 씻고 있던 아낙이 화성댁을 보곤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물동이도 들고 있지 않거니와 씻을 거리도 가지고 있지 않은 화성댁의 손을 힐끔 곁눈질했다.

“아, 아니 일은 무슨 일? 형준 엄마는 이 늙은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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