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26>
오늘의 저편 <226>
  • 경남일보
  • 승인 2012.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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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툭 쏘아 부치 듯 말하고 나서야 어이없는 자신을 발견한 화성댁은 스스로에게 은근히 놀랐다.

“그런 것이 아니라,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 어디 편찮으신 것 같아서 그러죠.”

아낙은 무안은 얼굴로 급히 둘러댔다.

‘망령이 나셨나? 빈손으로 우물가엔 뭐 하러 오셨담?’

속으론 화성댁을 비웃었다.

“짜게 먹었나? 목은 또 왜 이래 마르누?”

자신의 상황까지 알아차리고 만 화성댁은 상대에게 들으라는 듯 혼잣말로 구두덜거렸다.

‘넌지시 숙희 엄마 이야길 꺼내놓을까?’

일부러 물을 달게 마시고는 아낙의 눈치를 은근슬쩍 살폈다.

“날씨 한 번 좋타아!”

푸성귀를 다 씻은 아낙은 서먹한 분위기를 무마시키려는 듯 혼잣말로 목청을 높이며 궁둥이를 들었다.

마음이 급해진 화성댁은 엉겁결에 몇 발짝 상대 뒤를 따라갔다. 마침 집도 같은 방향이어서 다행이었다.

‘형준 엄마.’

‘예?’

‘혹시, 숙희 엄만??.’

혼잣말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던 화성댁은 별안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어갈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은 것이었다.

‘서울에서 안 왔나 봐?’

‘숙희 엄마만 왜 서울에 남아 있겠어요?’

‘통 얼굴을 볼 수 없어서 말이유. 설마 아이엄마하고 갈라선 건 아닌가싶어서 걱정이 되잖겠수?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네요. 숙희 엄만 우물가에도 통 나오질 않네요. 숙희 아빠가 물 길으러 나오는 것 같던데?’

‘어디 아픈 건 아닌지 모르겠수.’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이 드네요. 혹시 폐병에 걸린 건 아니겠죠?’

‘설마, 젊은 사람이? 아닐 거야?’

‘아니라면 왜 얼굴을 안 보이겠어요?’

또 혼잣말로 아낙과 주거니 받거니 하던 화성댁은 예행연습대로 하면 되겠다는 얼굴로 상대를 바짝 당겨갔다.

“딸네 집에 가시려구요?“

앞서가던 아낙이 앞뒤 없이 몸을 뒤로 돌렸다.

“아, 그 그래요.”

비로소 화성댁은 마을입구에 집을 두고 아낙의 뒤를 밟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김가 이야기를 꺼내 절호의 기회였다. 연습까지 해 둔 말이 어디에 숨었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때맞추어 자기네 집에 도착한 아낙은 사립문을 밀며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화성댁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허공으로 목을 돌렸다.

‘그래 같이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해. 나 살자고 남 죽일 궁리를 하면 안 되지 암 안 되구 말구.’

화성댁은 차라리 잘 되었다는 듯 목을 끄덕이며 뒷산으로 향했다. 최소한 오늘 당장은 김가와 산에서 또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어서 안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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