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227>
오늘의 저편<227>
  • 경남일보
  • 승인 2012.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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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퇘, 퇘 저리가. 퇘퇘퇘!’

난데없이 머리위로 날아와 징그럽게 짖어대는 까마귀를 보며 화성댁은 침을 뱉어댔다. 꺼림칙하다는 얼굴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몸을 마을로 돌리다간 그냥 산으로 들어갔다.

아이무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서면서 화성댁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번번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배꼽시계가 신호를 보내는군.’

허기를 느낀 화성댁은 애써 복잡한 생각을 떨어버리려는 듯 단순한 표정을 지었다.

간밤에 옆 동네의 갓난아기가 사망하고 말았다. 그 아기의 무덤을 바로 찾아낸 화성댁은 익숙한 동작으로 시체를 파냈다. 자루에 담고는 어깨에 둘러맸다. 어쩌다 사람을 만나면 도토리를 주워간다고 말하면 될 것이었다. 이래서 가을이 좋은 것이라고 일없이 뇌까렸다.

한낮의 태양이 화성댁의 정수리에 불침을 놓고 있었다. 그나마 바람은 시원해서 이마에 송송 맺혔던 땀을 잘도 씻어주었다.

‘아니 저 사람이?’

산을 내려오던 화성댁이 눈꺼풀을 번쩍 치켜들었다. 눈을 의심하듯 자꾸 껌벅거렸다. 눈을 비집고 봐도 자루 속에 든 갓난아기 시체의 아비였다.

‘음, 죽은 자식 불알 만지러 오는 거야 뭐야?’

화성댁은 그 아비를 보며 투덜거렸다. 하기야 빛을 보자마자 잃은 자식이라고 애석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건 절대로 아닐 것이었다.

화성댁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 아비에게만은 자루를 둘러맨 이런 꼴을 보여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으으악악!’

눈을 앞에다 대고 뒤로 걷던 화성댁은 기어이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무슨 소리를 들은 그 아비의 눈이 화성댁 쪽으로 퉁겨졌다.

움푹 파인 구덩이에 빠져버린 화성댁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날아가는 새들을 향하여 목을 맥없이 돌리던 그 아비는 눈을 거둬들였다. 아직은 젊음이 팔팔한 나이인 터에 세상을 다 살아버린 얼굴로 멀어져 갔다. ‘아이고, 죄를 받아도 싸지 싸!’

구덩이 밖으로 나오려고 기를 쓰던 화성댁은 자기를 탓하며 가슴을 툭툭 쳤다. 오른발에선 피가 나고 있었다. 왼쪽은 발목을 삐었는지 조금만 움직여도 기절해버리고 말 것만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안 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제발, 다리야 말을 좀 들어다오.’

나오는 피부터 막기 위해 저고리 옷고름 하날 찢었다.

친정집이 비어 있는 것을 본 민숙은 고구마를 캐고 있을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곧장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추밭에도 가 보았다

‘물을 길으러 가셨을까?’

우물가로 달려갔다. 두레박만 텅 빈 우물을 지키고 있었다. 민숙은 쿵쿵거리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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