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28>
오늘의 저편 <228>
  • 경남일보
  • 승인 2012.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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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 아버지 혹시 울 어머니 여기 안 오셨어요?”

집으로 간 민숙은 단숨에 뒷마당까지 달렸다.

“왜 무슨 일인데?”

진석은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안 보여서요.”

민숙은 예감이 좋지 않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밭에 가셨겠지?”

“다 찾아보았어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래? 어디 가셨을까?”

걱정스런 얼굴로 진석은 방에서 나왔다.

“오늘 분명 장날은 아니죠?”

정신 나간 얼굴로 그렇게 묻고 나서야 민숙은 자기 자신에게 코웃음을 쳤다. 바로 어제 장날이었고 잊고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았던가.

화성댁은 장날이 되면 딸과 함께 시장엘 갔다. 어쩌다 혼자 가게 되더라도 딸네 집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물어가곤 했다.

‘아얏!’

구덩이 밖으로 기어 나오다 왼발로 흙벽을 툭 치고 만 화성댁은 비명을 질렀다. 더욱이 엉덩방아까지 찧으며 주저앉고 말았다.

“뒷산으로 가 보자.”

마당으로 내려 서 있던 진석은 개구멍 쪽으로 눈을 그었다.

“아 맞다. 도토리! 당신은 그냥 집에 있어요.”

민숙은 대문간으로 쏜살같이 달렸다. 해마다 이맘때이면 도토리를 줍기 위해 산을 뒤지고 다니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었다.

“장인어른 무덤에도 한 번 가 봐.”

진석은 달아나는 아내의 등에다 대고 급히 목청을 뽑았다.

‘아니고 신령님, 천지신명님, 용서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봐 주세요.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정말 마지막입니다. 혀를 콱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두 번 다시 이런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화성댁은 너무 절실하게 주문을 외고 있었다.

“어머니이, 어머니이??.”

뒷산으로 오르면서 민숙은 목소릴 높여 화성댁을 불렀다.

“어미, 여기 있다!”

딸의 목소리를 들은 화성댁은 귀가 번쩍 뜨인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이어 자루로 눈을 돌린 그녀는 목을 짧게 가로저었다.

화들짝 놀란 새들의 날갯짓에 화성댁의 소리는 묻혀버렸다.

‘잠깐 여기 묻어둘까?’

딸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옴을 느낀 그녀는 눈을 아래로 깔며 두리번거렸다. 호미로 땅을 긁듯이 하며 조심조심 흙을 파기 시작했다.

할 일 없는 메아리도 낮잠을 자는지 주위는 조용하기만 했다.

‘대체 어디 가신 거지?’

또다시 목청을 뽑던 민숙은 공허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섰다. 산에다 대고 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면 어머니의 반응이 있어야 했다. 약속 없는 새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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