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30>
오늘의 저편 <230>
  • 경남일보
  • 승인 2012.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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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들어온 화성댁은 등잔에 불부터 환히 밝혔다. 자리에 드러누운 그녀는 피로인지 잠인지 모를 노곤함이 한꺼번에 몰려옴을 느끼며 눈을 스르르 감았다. 아무튼 이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이!”

방문에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본 민숙은 신발을 벗는 둥 마는 둥 하며 마루 위로 올라섰다.

“부뚜막에 김 서방 약 있다.”

대답 대신 사위의 약부터 챙기며 간신히 입을 움직이는 화성댁의 입언저리엔 얕은 미소가 떠올랐다.

“예? 지금 약이 문제예요?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하루 종일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아세요? 어디 가시면 가신다고 말씀을 하고 가셔야죠.”

민숙은 추궁이라도 하듯 숨도 쉬지 않고 왈왈 쏘아댔다.

“이 어민 괜찮다. 기, 김 서방 약부터??.”

갖다 주라는 말까지 하지도 못하고 화성댁은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어머니 왜 이러세요?”

직감적으로 아주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힌 민숙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어머니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댔다.

다하지 못한 할 말이 안타까운 시간 속에 녹아내리고 있을까. 입술만 사정없이 꿈틀거릴 뿐 이제 화성댁의 입에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속수무책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어머니의 시간이 바닥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민숙은 미친 듯 울부짖었다. 이대로 어머니를 보낼 수는 없었다. 막아낼 방법은 절대로 없었다. 절대적인 절망감에 빠져버린 그녀는 무기력의 늪으로 한없이 빨려들고 있었다.

‘가여운 내 새끼! 울지 마라. 어쨌든 몸성히 잘 살아야 해.’

아직은 정신이 또렷한 화성댁은 우는 딸을 향하여 목을 가로저었다.

“어머니 기다리고 계세요. 김 서방 데리고 올게요.”

앞뒤 없이 울음을 뚝 그친 민숙은 허연 얼굴로 뛰쳐나갔다.

‘안 된다. 남의 눈에 띄면 어쩌려고?’

말이 소리로 나오지 않아 화성댁은 한숨을 쉬듯 숨을 깊이 내몰아쉬었다. 불현듯 김가를 떠올리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이 어미한테 시간이 없다.’

문으로 목을 돌린 화성댁은 두 눈을 그곳에 꽂아두고 있었다. 김가가 구렁이를 잡으러 뒷산에 들락거리고 있다는 것을 딸에게 일러주어야 했다.

“뭐 장모님께서?”

화성댁 소식을 전해들은 진석은 단숨에 마당으로 내려섰다. 습관처럼 개구멍으로 달려가선 허리를 굽히지 못하고 가슴을 주먹으로 툭 쳤다.

“지금 남의 눈이 문제예요?”

민숙은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이라는 그것에만 최면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단 한번밖에 지키지 못할 임종의 순간이기에 여하간 남편과 함께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우, 우, 지켜드리고 싶다. 지켜드리고 싶어.”

진석은 머리를 담에 툭 찧으며 한탄스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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