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31>
오늘의 저편 <231>
  • 경남일보
  • 승인 2012.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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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마세요. 당신 나타나면 어머니 마음이 더 불편하실 거예요.”

비로소 조금 냉정해진 민숙은 처량한 목소리로 남편을 위로하곤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땅에 꺼져라 한숨을 쉬어대던 진석은 불현듯 진저리를 치며 개구멍으로 다가가 허리를 깊이 굽혔다.

‘얘들이 왜 이렇게 안 오누? 떠날 시간이 다 되었는데??.’

화성댁은 있는 힘을 다하여 문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달려오고 있을 사위를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섰지만 떠나기 전에 그 얼굴을 꼭 보고 싶었다. 김가 이야기도 꼭 해주어야 했다. 딸이 먼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 편안히 가세요. 김 서방은 어머니 걱정하실까봐 마음으로만 온대요. 벌써 여기 와 있을 거예요.”

자신의 어깨너머로 그어지는 어머니의 눈길을 느낀 민숙은 울먹이는 소리로 잘도 둘러대고 있었다.

‘김가가 구렁이 자압으러??.’

화성댁은 있는 힘을 다하여 입을 뗐지만 소리로 발성되지는 못했다.

멎었다간 이어지고 하던 화성댁의 숨이 완전히 멎었다.

“어머니! 장모님!”

민숙의 비명과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진석의 목청이 거의 동시에 울렸다.

화성댁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절망적으로 통곡을 해대던 민숙의 눈과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있던 진석의 눈이 화성댁의 눈에 꽂혔다.

“뒤, 뒤잇산!”

눈을 번쩍 뜬 화성댁은 단말마적인 힘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

귀를 어머니의 귀에 바짝 갖다 대고 있던 민숙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목을 두 번 끄덕였다.

‘장모님, 정말 죄송합니다.’

눈으로 그렇게 말한 진석은 흡사 주문을 외듯 편히 가시라고 수도 없이 되뇌고 있었다.

턱을 자꾸만 들며 화성댁은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고 했다.

민숙은 무조건 목을 끄덕였다.

이윽고 화성댁은 목을 옆으로 펴며 숨을 스르르 거두고 말았다. 정말 그랬다. 길이를 측량할 수 없는 아주 먼 길을 맥없이 아니 너무 편하게 스르르 떠나고 만 것이었다. 짚불이 유감없이 사그라지듯 그렇게.

화성댁이 세상을 떠난 삼일 뒤 숙희의 어머니도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글쎄, 화성댁은 김가하고 전생에 무슨 원수가 졌다고 아기 엄말 저승길 동무로 데려갔을꼬?”

한 마을에서 연이어 초상이 나자 학동마을 사람들은 할 일 없이 그렇게 지껄여댔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부터 민숙은 거의 집밖 출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을사람 만나는 것이 귀찮고 성가시기만 해서였다. 그들은 화성댁도 없는 학동에 혼자 남아 있는 민숙이의 속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어서 얼굴이 부딪칠 때마다 서울로 가라고 등을 떠밀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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