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34>
오늘의 저편 <234>
  • 경남일보
  • 승인 2012.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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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아,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 응?”

시어머니의 마음을 다 읽고 있던 민숙은 서럽지만 순순히 물러나야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 나빠. 진짜 나빠. 엄마 가지 마. 가지 마. 엄마!”

멀어져 가는 민숙을 보며 용진은 발악을 했다.

아들의 울부짖음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온 민숙은 발길 닿는 대로 그냥 걸었다. 남편은 가여웠지만 그의 병은 증오스러웠다. 학동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한다면 낯선 변덕일까. 자식과 생이별해야 하는 어미로서의 아픔에만 최면이 걸려 누구의 외로움을 챙기고 헤아리고 할 마음의 여유가 모기눈물만큼도 없었다. 최소한 이 순간만은 혼자 있을 남편에게도 발길이 당겨지지 않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그와 얼굴을 마주대한다면 그를 원망하게 될 것만 같았다.

“누나! 어쩐 일이세요?”

넋 나간 얼굴로 가게에 들어서는 민숙을 본 형식은 놀라야 할지 반가워해야 할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머! 형식아, 내가 왜 여기 왔니?”

뜨악한 눈으로 상대를 보던 민숙은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로 그녀는 자신의 발길이 어쩌자고 형식에게 당겨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세요? 어디 아프세요?”

민숙을 부축하여 의자에 앉혀 주었다.

“형식아, 나 술 한잔만 사 줄래?”

민숙은 그렇게 말해 버렸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동정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형식에게만은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주책없는 눈물까지 보이고 말았다.

“그래요. 누나 한잔해요.”

민숙에게서 평소와는 너무 다른 이상기류를 느낀 형식은 더는 아무 말도 묻지 않고 가까운 선술집으로 향했다.

땅거미가 내리는 학동은 고요하기만 했다. 뒷산에 올라가 빤히 보이는 마을 앞길을 지켜보고 있던 진석은 맥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누나, 이제 그만 마셔요.”

민숙이가 또 술잔을 입에 훅 털어 넣으려고 하자 형식은 잽싸게 그 잔을 낚아채 버렸다.

“이리 줘. 형식아, 내가 엄마니? 내가 엄마냐구? 흥, 나 같은 것도 엄마라고 어린 것이 그 먼델 찾아오는 걸 보면 엄마라는 이름표는 달고 있나 봐. 그치? 뭐라고 말 좀 해 봐. 내가 엄마니? 엄마냐구?”

눈물을 훌쩍이며 혀 꼬부라진 소리로 같은 말만 엮어대던 민숙은 기어이 술잔을 도로 빼앗아갔다.

“일어나요. 집에 가셔야죠?”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잘도 숨기고 있던 형식은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술병을 다 치워 버렸다.

또 개구멍으로 빠져나간 진석은 뒷산으로 올라갔다. 아내가 막차를 탔으면 지금쯤 집에 도착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형식이 너 죽을래?”

민숙은 술잔을 놓지 않겠다고 맨주먹까지 휘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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