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36>
오늘의 저편 <236>
  • 경남일보
  • 승인 2012.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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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민숙의 다리가랑이 사이를 비집다 말고 형식은 자신에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바지를 주워들며 머리로 진저리를 쳤다. 뭔가를 찾으려는 듯 사방으로 목을 돌려댔다. 벽 쪽으로 몸을 돌리며 남근을 거머쥐는 것이었다.

“형식아.” “으, 으응?” 등 뒤에서 들려온 민숙의 목소리에 형식은 주춤하며 목을 조금 돌렸다. “여자가 되어줄게.” 민숙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딱 한번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싫습니다.” 형식은 딱 잘라 거절했다.

“싫으냐? 그럼 내 옆에 와서 그냥 누워만 있어.” 철없는 이웃집 남동생을 꼬드기는 누나가 되어 민숙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형식의 알몸 앞에서 새삼 허벅지 사이가 젖어오고 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가 가여워서 몸을 딱 한번 주어버리고 싶은 것이었다.

“내가 무슨 부처인줄 아세요?” 형식은 볼멘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부처 흉내 내지 말고 빨리 와라.”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참 말도 많다.”

민숙은 일부러 옆으로 돌아누웠다.

“나중에 날 원망하지 말아요.” 그러나 형식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곧이어 끙끙 앓는 소리가 안에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허, 바보, 바보??.” 허탈한 얼굴로 민숙은 뇌까렸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서울로 펄쩍펄쩍 뛰어가던 진석은 어느 순간 속도를 늦추었다. 헐떡이는 숨을 달래며 깊 옆의 나무를 붙잡고 섰다.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기만을 기다려 여관을 나온 형식과 민숙은 나란히 학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은 먼동이 어둠을 뚫지 못하고 있었지만 민숙은 혼자 갈 수 있었다. 지지대고갯길까지만 바래다주겠다고 하며 형식은 굳이 따라나선 것이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래두?” 서울을 벗어나면서부터 줄곧 민숙은 형식의 등을 떠밀어 댔다.

“알았어요. 저기까지만 갈게요.” 형식은 또 같은 말로 대꾸하며 그녀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어느 샌가 훤한 아침 속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 진석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내가 차를 타고 올 확률이 많다고 마음을 정한 것이었다.

불현듯 진석은 귀를 바짝 세우며 몸을 뒤로 돌렸다. ‘저것들이!’

나란히 걸어오고 있는 민숙과 형식을 본 진석의 입에서 상스러운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내에게 향하는 형식의 마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를 도무지 남자로 보지 않는 아내의 마음도 다 읽어 두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길섶의 싸리나무에 몸을 숨긴 진석은 무심결에 돌을 집었다. 아내와 형식이가 함께 밤을 보냈다는 결론을 쉽게 얻어내고 만 것이었다. 남자와 여자를 아는 남녀가 함께 밤을 보냈다면 다 알조가 있는 것이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그들이 다가올 때 진석은 이를 윽물며 돌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사고력이 한 방향으로만 집중적으로 물려버린 탓일까. 그들을 노려보는 진석의 눈엔 오로지 살기만이 번득일 뿐이었다.

여자로 돌변한 아내가 몸으로 다가올 때면 차라리 바람이라도 피라고 속으로 말하곤 했다. 막상 둘이 나란히 걸어오는 것을 본 그는 간밤에 둘이 실컷 엉켜 있었던 장면부터 떠올렸고 앞뒤 없이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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