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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듯 떠난 마음…석불을 만나서야 안도하네(36) 불국정토의 가섭암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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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2.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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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어느 누가 구박받고 살라만은 이맘때가 되면 한 장 남은 달력이 ‘뭘 했느냐?’고 은근하게 죄여오는 구박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자성하며 미안하기도 하지만 간간이 부아가 치밀어오르기도 한다. 아니라고 해봤자 들은 척도 안 하고, 아등바등 달려가면 가로질러 먼저가고 땀 흘려서 일궈 놓으면 한방에 낚아채는 온갖 꾼들을 무슨 수로 감당하며, 장대 같은 자들이 까치밥까지 다 따 가는데 쥐뿔도 부지깽이도 없는데 냅다 흔들기라도 열심히 했으면 됐지 안 그런가? 하고 군담을 했더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는대로 눈길이 따라오며 웃어주던 달력속의 예쁜 모델이 이제는 쳐다만 봐도 눈을 흘겨댄다. 휴일 핑계대고 뭉개고 앉아 빈둥거려 봤자 속절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뻔하고 “다녀오리다.” 하고 휑하니 집을 나서고 볼일이라서 주섬주섬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일상에서 벗어나 바깥세상과 마주할 때는 언제나 새롭고 생소한 것이 보고 싶은 터라 이참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바위를 찾아 맞서볼 요량으로 금원산 문바위를 찾아서 35번 고속도로를 타고 진주에서 북진을 했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엔 간밤에 하얗게 내린 눈이 아침햇살을 받아서 성큼 한걸음 다가 온 것 같이 가까워져서 또렷하게 보이고, 휙휙 지나가는 도로가의 산자락은 갈색으로 물들어버린 가랑잎의 풍광이 커피를 볶는 내음 같이 은근한 맛이 감돌아 또 다른 정취에 흠뻑 젖다보니, 여론조사 버튼 안 눌러줘도 되고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는 맹랑한 아가씨 전화 안 받아도 되니 길나서기를 열 번 잘 했다 싶다.

지곡IC를 나와 24번 도로를 따라 7~8분 거리의 안의교차로에서 다시 3번 국도를 타고 10km 남짓한 거리의 마리면 삼거리에 닿았다. 마리삼거리에서 거창 수승대로 가는 방향이라서 좌회전을 하여 37번 도로로 접어들었다. 곧장 직진을 하면 무주구천동으로 가는 길이라서 장풍삼거리의 갈림길에서 수승대가는 길인 왼쪽길로 들어서니 이내 위천면소재지이다. 위천우체국을 지나자 보물 제530호인 ‘가섭암지 삼존석불’과 ‘강남사 터 석조여래입상’을 알리는 황토색 안내판이 고맙게도 길마중을 나와 있어서 안내에 따라 좌회전을 했다.

마을을 벗어나서야 위천들녘이 꽤나 넓다는 것을 알았다.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녘은 사방으로 3~4km는 족히 됨직한데, 멀리 산기슭마다 옹기종기 촌락을 이뤄 정겨움이 가득하고, 들녘 가운데로 모닥모닥 눌러 앉은 마을들도 고만고만하게 옹골찬 풍요를 끌어안고 조용하기만 하다. 띄엄띄엄 서넛 마을을 지나자 ‘석조여래입상’을 알리는 안내판이 강남마을 표지석 앞에 다소곳하게 나와 섰다. 마을보다 훨씬 낮은 들판 가운데에 강남사라는 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작은 주치장이 말끔하게 마련돼 있고 골기와 맏배지붕에 단청이 선명하고 빨간 기둥사이로 홍살을 둘러쳐서 멀리서 보아서는 커다란 비각같이 보였는데, 석조여래입상을 모신 불당이었다. 발끝에서 천정까지의 엄청난 크기의 광배를 등에 붙이고 도드라지게 양각된 불상은 천년세월의 풍상에 닳고 닳았건만 자비로운 표정만은 윤각만으로도 확연하고, 어깨를 감싸고 발끝까지 드리워진 옷자락의 주름은 물결이 여울지듯이 하늘거리며 흘러내리는 것만 같다. 더구나 불상과 광배가 하나의 돌인데도 광배의 가장자리두께는 한 뼘이 채 되지도 않게 연꽃잎 같이 날렵하고, 높이가 365cm에 너비 130cm로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고 정교하여, 우아하고 장엄하다. 손의 모양은 많이 훼손되었으나 오른손은 중생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시무외인을, 왼손은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여원인을 표현한 것이라 하여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였으나 얼른 소원이 생각나지 않아서 꾸벅꾸벅 절만 하고 발길을 돌렸다.

잣나무가 가로수로 줄지어선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오르자 1300여m인 금원산과 기백산의 골짜기가 맞모아진 계곡입구의 매표소를 지나서부터 계곡물소리가 유난히도 카랑카랑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인지 바윗돌을 휘감고 흐르는 물은 한여름을 방불케 하고, 풍광에 도취되어 천상으로 돌아갈 시각을 넘겨,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바위가 되어버렸다는 세 선녀의 전설이 담겨진 선녀담의 물빛은 유난히도 파랗고 맑은데, 한 점의 일렁임도 없이 고요하여 괜스레 집적거려보고 싶을 지경이다. 이를 두고 심산유곡의 명경지수라 했던가?

서너 군데의 작은 주차장이 층층이 잘 마련되어 있지만 차로 오르기에는 아까운 풍광이라서 차를 세워두고 계곡을 따라 산길을 걸어 올랐다. 사방이 아름드리의 소나무 숲이라서 송진 냄새를 한가득 마시며 커다란 바윗돌이 저마다 덩치자랑을 하는 계곡을 따라 1km정도나 갔을까 하는데 느닷없이 산덩이만한 시커먼 바위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계곡을 따라 길을 사이에 두고 약간 길쭉하고 밋밋한 공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누웠는데 바닥과의 틈새에는 지붕의 처마 밑처럼 장정 이삼십 명이 둘러앉을만한 공간이 뜬 엄청난 크기이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바위로는 제일 크다는 문바위란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수십 길 높이의 암벽 산을 쳐다보는 것 같을 뿐 문바위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고 ‘달암 이선생 순절동’이라는 새김 글씨만 있어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마주하고 있는 작은 바위와의 틈새로 들어서자 가섭암으로 들어가는 옛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곡과 문바위와의 사이에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내기 전에는 마주한 작은 바위와의 틈새가 유일한 통로라는 흔적이 완연했다. 문바위의 끝을 지붕으로 삼고 옛길의 흔적을 따라 문바위를 돌아들어 갔다. 거암거석의 영락없는 일주문이다. 묘한 기분을 느끼며 들어서자 그 옛날 가섭암의 터였을까 하는 나직한 축대위로 절집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적 없는 작은 기와집 한 채가 있고 집 뒤편의 산중턱에 커다란 바위 예닐곱이 육중한 몸을 서로서로 기대어 한 무더기가 되어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물 제530호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이라는 안내판이 일러주는 커다란 바위 무더기를 향해, 층층이 위로 올라가며 조금씩 좁아지는 돌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밟을 때마다 고려말 충신이셨던 달암 이원달 선생께서 불사이군의 충절이 되어 망국의 한을 안고 이 돌계단을 밟고 올라 저 바위 무더기 속의 어딘가에 숨어 버렸을까, 아니면 불국정토를 이루고자 대덕고승들이 구도의 길을 찾아 오르고 또 올랐을까하는 생각에 천 년 세월을 거스르는 긴긴 역사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미움도 고움도 다 벗어두고 번뇌를 떨치고 밟아야 하는 계단! 얼마나 많은 세월을 두고 얼마나 많은 중생들이 오르내렸으며 그들은 또 무엇을 얻고자 함이었을까? 머릿속은 망망대해를 덮은 끝없는 해무를 바라보듯 온갖 상념은 끝이 없어 갈피를 못 잡는데 못다 버린 것이 있으면 마저 버리고 숨을 돌리라는 뜻인지 손바닥만한 평지가 나왔다. 위로 쳐다보니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시야의 전부를 가리며 좌우로 갈라서 작은 틈새를 열었는데 틈새를 따라 겨우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가파른 돌계단이 또 나왔다. 모서리도 바닥도 반들반들 닳아서 긴긴 세월과의 인연의 끈을 이어주고 있었다.

촘촘하고 반듯한 돌계단을 오르자 계단의 끝이 석굴의 입구이고,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바위 두 개가 ‘ㅅ’자 형으로 맞닿아서, 기대는 왼쪽 바위를 오른쪽 바위가 받혀주며 벽면을 이루고, 기대는 바위는 밑면이 평평하여 비스듬한 지붕이 된 바위 틈새의 거대한 석굴이었다. 족히 여남은 평은 됨직한 바닥은 반듯하게 다듬어졌고 벽면을 깎아서 다시 도드라지게 양각된 삼존석불은 찾아드는 중생들이 정면으로 다가서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계셨다. 바닥에서 네댓 뼘 떨어진 위로 좌대와 입상이 사람 키보다는 훨씬 더 큰 높이로 아미타 본존불과 좌우 협시불인 지장과 관음보살의 삼존불입상은 한 점의 훼손도 없이 온전한 모습으로 중생을 반기신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천년역사의 위대함이시여! 작은 불단에 헌향하고 예를 갖추니 삼존불의 온화한 자비의 미소가 사바세계를 향해 잔잔하게 번져 갔다.

거창강남사지 석조여래입상
거창강남사지 석조여래입상
문바위
문바위
마애삼존불 계단
마애삼존불 계단
가섭사지 마애삼존불
가섭사지 마애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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