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을 잃어가는 학교와 마음을 잃어가는 아이들
역할을 잃어가는 학교와 마음을 잃어가는 아이들
  • 경남일보
  • 승인 2013.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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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진주교대신문사 편집국장)
최근 KBS 2TV에서 방영하고 있는 ‘학교 2013’이라는 드라마가 이슈이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학생들 사이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자의 길을 꿈꾸는 나로서는 이러한 이야기에 누구보다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얼마 전에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부터 가해자까지 사실적으로 취재한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이 내 눈을 끌었다.

학교 현장으로 교육실습을 다니며 2주일 동안 한 학급의 아이들을 관찰하다 보면 아이들 사이의 이른바 권력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혹자는 초등학생이라고 무시할지 모르지만 아이들도 친구들 사이의 묘한 위계질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밝고 활기찬 아이 또는 동급생들보다 덩치가 큰 학생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누린다. 그런 아이들은 학급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실습생들은 그 위계질서의 가장 위에 있는 학생과 친해지면 보다 편하게 수업을 할 수 있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그리고 이 우스갯소리를 몸소 체험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친구의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느낀다.

실습 중 학급에서 소위 ‘짱’ 역할을 하는 학생과 일부러 친분을 쌓는 한편 소외되는 아이에게 한 번 더 눈길을 주고 손을 내밀기도 한다. 소외당하는 아이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과 친구들과 다시 어울릴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공존한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다가와 “저 친구랑 놀지 마세요, 선생님”이라고 말할 때 나무라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과연 왕따 문제에 어른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라는 무력감이 든다. 아이들은 이미 어른들의 세계를 고스란히 보고 배운 것이 아닌가.

아이들은 학급에서 더 나아가 상급생이 하급생에게 예의를 강요하는 이른바 ‘일진’ 놀이를 하기도 한다. 요즈음에는 이러한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이 오히려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손꼽히는 아이들인 경우가 늘고 있다. 선생님의 신뢰를 등에 업고 교실 안에서는 마치 선생님과 같은 힘을 휘두르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사실 학교 안에서 선생님이 왕따나 학교 폭력을 눈치 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뿐더러 교사의 직접 개입이 일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이를 핑계로 피해 학생들이 내미는 손을 무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언제부터 학교가 ‘지식’을 ‘습득’하는 곳에 그친 걸까.

학교 폭력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충분히 해 왔다. 잘잘못을 가리는 토론도 끊임이 없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 아이들은 알 수 없이 다른 친구를 괴롭히고, 어떤 아이들은 알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잘못이 교사에게 있는지, 아이들 탓인지, 부모들의 탓인지는 더 이상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양질의 대안이 필요하다.

/김민희·진주교대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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