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시대의 변화
[이준의 역학이야기] 시대의 변화
  • 경남일보
  • 승인 2013.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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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살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참으며 한 푼 두 푼 알뜰살뜰 모아 대대손손 물려 줄 요량으로 아주 비싼 값으로 장만하였던 곱디고운 자개농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하나 무겁고 귀찮다며 어느 자식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폐기물처리 딱지를 발부받아 길거리에 내어 놓으나 그 역시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우리 어머니 시대의 비애이다. 짙은 화장에 울긋불긋 머리를 물들이며 제멋대로 옷차림을 하고 돌아다니면 도화살이 낀 화냥년(고향으로 돌아온 여자 還鄕女, 나라의 힘이 없어 찬탈·유린된 역사적 비애)이라며 빗자루 몽둥이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풍경이 낯설지 않은데, 이제 이런 모양새를 젊고 발랄한 개성의 시대라고 반기고 있다. 세월이 변했고, 세태도 변했다. 변하는 시대 속에서 이미 지나간 가치를 붙잡고 아등바등하는 것은 각주구검(刻舟求劍)과도 같다.

사주팔자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꺼렸던 살(煞)들이 지금은 힘 있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그런 살 중의 하나가 도화살(桃花殺)이다. 귀신도 쫓아낸다는 복숭아꽃이 어찌하여 나쁜 살로 인식되었을까? 봄철 동쪽으로 뻗어나간 복숭아 가지는 사시사철 귀신을 물리친다 하여서 금년처럼 계사년 사오미 남방의 인성(印星)이 되는 동방 목국을 형성하는 해묘미(亥卯未) 삼합에 있는 돼지띠, 토끼띠, 양띠의 삼재(三災)살을 예방하기 위하여 이를 꺾어 주머니 안에 간직하면 삼재가 소멸하다는 효험스러운 복숭화 꽃이 어찌 흉한 살(煞)로 여겨졌을까? 아마도 집안의 질서와 여필종부를 가장 주요한 가치로 인식하였던 옛사람들의 관점이 아니었을까 추론도 하여 본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지식의 융복합시대, 인터넷의 일상화, 무수한 방송매체의 난무, 스마트폰의 이미지와 소리와 말과 글들이 융합·소통되면서 도화살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인기도 얻고 사업도 잘되고, 돈도 벌고 놀기도 잘하는 시대이다. 이 시대에서 도화살이 끼었다고 마냥 입을 삐쭉이며 힐난하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하기에 지금은 낡은 가치기준으로 본 살(煞)들을 재검토해야 할 때이다. 옛날의 자개농은 사치이고 갖고 싶은 욕구였지만,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성가시고 귀찮은 폐기물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명품들 역시 세월이 지나면 어이없는 폐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도화살은 삼합(三合)과 패지(覇支)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인오술(寅午戌)에서 묘(卯)를, 신자진(申子辰)에서 유(酉)를, 해묘미(亥卯未)에서 자(子)를, 사유축(巳酉丑)에서 오(午)를 보면 도화살(桃花殺)이다. 즉 팔자에 자오묘유 패지가 있으면 도화기운이 있다고 보아도 좋다. 묘(卯)도화는 색정에 심히 동요되고, 자(子) 도화는 투기(妬忌)하고, 유(酉)도화는 인륜을 어지럽히고, 오(午)도화는 성격이 활달하고 달을 희롱한다. 도화살이 년·월지에 있으면 장내도화(牆內桃花)라 하여 부부의 사랑이 깊어지나 일시에 있으면 장외도화(牆外桃花)라 하여 기세(氣勢)싸움으로 부부싸움이 끊일 날 없다. 도화가 형충파해를 입으면 파란만장한 삶이 이어진다.

도화살의 대표적 인물은 중국의 소황후이다. 그녀는 남조시대 양나라 명제의 딸이었는데 천보 20년 2월(卯月), 열아흐레 새벽(卯時)에 태어났다. 그는 뛰어난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몇 번의 남자를 바꾸는 기이한 운명을 타고 났다. 원천강이라는 술사는 그의 운명을 모의천하 명대도화(母衣天下 命帶桃花)라 하였다. 절세미인이 관인의 띠를 찼으니 천하가 그녀의 품에 안겨 희롱을 당한다는 내용이었다. 원천강의 운명서는 워낙 유명하여 우리나라 과거시험 잡과에 ‘원천강’이라는 시험과목도 있었다.

소황후는 원천강의 말대로 몇 번의 남편을 바꾸는 희대의 인물이 되었다. 13살에 진의 왕비, 그후 수양제의 황비, 우문화급의 숙비(淑妃), 두건덕의 애첩, 토번(티베트)왕의 왕비, 이후 그녀보다 15살이나 아래인 당나라를 세운 이세민의 애첩으로 살았다. 비록 여필종부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남자들은 모두 천하를 제패한 군주들이었다. 일지(日支)에 대(帶)를 차고 도화가 동주하는 등 운세의 흐름이 모두 좋았다. 이처럼 사람에게 도화살이 있으면 인간관계가 좋아 사업이나 일을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다. 반면 도화살이 없으면 무뚝뚝하고 타인과 교제에 실패하는 수가 많다.

어떻든 도화살은 강력한 성적 에너지로서 무료하고 갑갑한 일상적인 것, 지시명령 같은 것, 규격이고 제도적이고 시스템적인 것을 못 견뎌 하는 개혁과 변혁의 기운이라 하겠다. 하여 규격화된 질서의 시대에서는 도화살이 당연 힐난받아 마땅한 살이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사람이 성패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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