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B에 대한 풍경A의 불편한 진실
풍경B에 대한 풍경A의 불편한 진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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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형란 (경상사대부설고 교사, 시인)
기존의 풍경을 ‘풍경A’라고 하고 밤사이 내린 폭설로 하얗게 변한 풍경을 ‘풍경B’라고 하자.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어있더라 는 말처럼 자고 일어났더니 풍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무 기척도 없었다, 잠든 동안에는. 여기저기서 호들갑을 떨 정도로 대단한 눈의 파도라마가 펼쳐져 있었다.

여자(A)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큰딸 같았다.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고 이웃에게 어려운 삶의 무게가 있으면 기꺼운 희생과 봉사로 무거운 어깨를 들어주었다. 따뜻하고 편안한 성품으로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여자(A)를 많이 따랐다. 여자(A)는 인간적이었고 주위는 평화로웠다. 이 거리에는 늘 평범한 사람이 오갔다. 가끔 경적을 울리는 차로 눈살을 찌푸리는 일도 있었지만 촉수 낮은 포장마차의 인심으로 거리빵 몇 개가 더 얹히는 훈훈함도 있었다. 겨울이라 빨리 지는 해로 서둘러 퇴근길에 오르는 풍경A는 어제도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여자(B)는 처세술이 뛰어나며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서 꾸준히 앞으로 달려갔다. 때때로 남자와 엉킨 소문이 무성했으나 여자(B)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또 자신의 앞길을 막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절벽 아래로 밀어내었다. 여자(B)는 빠르게 세상의 중심으로 들어갔고 그녀의 소식은 실재보다 매스컴을 통해 더 화려하게 들려왔다. 거리에는 폭설로 사방의 걸음들이 막혔다. 그러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에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불편 따위는 눈 속으로 밀어 넣으며 너그럽게 용서했다. 경적도 삼갔으며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하루를 보냈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풍경B는 천국 그 자체였다.

사회가 안전하게 유지되고 정상적으로 소통되는 것은 변함없는 사람들과 데면데면하게 존재하는 대다수의 일상적인 풍경 요소들 덕이다. 그러나 너무 조용하거나 흔하다는 것은 당연하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과 동격일까? 이런 사회적 불감증이 여자(A)와 풍경A를 서운하게 만든다. 마치 신체와 내부의 장기들이 아무렇지 않으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다가 발가락 하나라도 다쳐 보아야 몸의 중요성을 비로소 깨닫듯이 말이다. 그리고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알고만 있다가 외모가 뛰어나면 재능의 효과마저 배가되는 게 오늘날 현실이다. 현대 사회에는 외모도 능력이고 운도 실력이라고 하니 말이다.

퍼붓던 눈이 그쳤다. 하얀 색으로 넘실거리던 풍경B가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벗겨내고 있다. 도로 위에는 검은 눈이 풍경B의 대리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현란하다는 것은 역시 48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풍경B가 아무리 노력한들 풍경A의 진실성과 섬세함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 왜냐하면 풍경A는 시간과 가치 있는 정신의 프로페셔널리즘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버릇처럼,

/경상사대부설고교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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